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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May 19. 2024

감성적 경험에 대한 갈증

나는 왜 주광색 조명에 열광하는가.

나는 아주 확고한 개인 취향이 있다.

(평소 감성적인 일을 할때 작업을 하는 공간)


주광색 조명, 빈티지한 인테리어, 진한 월넛 컬러의 가구, 여러 잡다하고 자유로운 감성을 나타내는 쪽지, 그림, 어반스케치, 레트로한 컬러 소품, 빨간 머리 앤 느낌의 감성, 유키구라모토의 음악 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지브리의 아기자기한 감성, 오감을 잘 표현한 글귀, 아레카 야자, 테이블 야자, 몬스테라 같은 관엽식물, 감성적인 오르골 소리,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 유니언잭, 해리포터, 90년대 발라드, 리안 모리아티 작품, 손뜨개로 만든 잔잔한 레이스 모양의 소품, 넬레 노이 하우스 작품 등.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고리타분한 취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러한 감성적이고 안정된 분위기에 젖어든 나의 모습에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바쁜 생활 속에서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묻어나는 감성적인 경험이 부족할 때 불안정함을 느끼고 욕구불만처럼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독서광은 아니면서도 잔잔한 느낌을 주는 책을 오랫동안 읽지 못했을 때의 욕구불만, 넷플릭스를 통해 본 빨간 머리 앤 같은 감성의 영상을 한동안 보지 못했을 때의 불안정함은 생각보다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


꼭 며칠동안 변을 보지 못한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이랄까. 아님 시험기간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찝찝함이랄까.


오늘과 같이 유독 감성적인 무드에 젖어들고 싶은 날이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작업실에서 혼자 유키구라모토의 음악을 틀어놓고 주광색 스탠드를 켜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기분.


오늘은 딱 그런 멜랑꼴리한 기분이라 내 작업공간에 놀자고 찾아온 아이에게 엄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잠깐 시간을 줄래? 하고 부탁을 했다. 말없이 나가는가 싶더니 고사리 손으로 편지 한 장을 써왔다. 그 편지에는 틀린 맞춤법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해. 엄마. 엄마을 좋아해서 미안해.


왜 미안하냐고 물으니 엄마의 시간이 필요해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엄마를 좋아해서 같이 있고 싶은 자기의 마음이 미안하다고.


그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미안한 마음이 아니라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하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아이의 그런 작고 소중한 감정표현에 하루 내내 쌓여있던 감성적 경험에 대한 갈증이 해갈된 듯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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