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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May 02. 2024

제1화. 강박증

안녕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1. 


 해는 점점 길어지는데 어째 날씨는 흐리멍덩하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오만 인상을 쓰며 마른땅 위를 덤프트럭이 막 지나간 듯 뿌옇게 피어오르는 미세먼지가 봄을 말했다. 


 그를 피해 코트로 입을 가리고 걸어보지만 아침부터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서는 오늘 하루가 순탄치 않게 나쁘게만 흘러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슬며시 입을 가리던 옷깃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로운 아침인 척 집 앞 1분 거리 내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집 건물 지하 2층에 위치한 사우나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욕탕 특유의 냄새와 증기들이 맨홀을 통해 올라오는 모습. 근처 동사무소 앞 시골에서나 볼 법한 큰 나무까지... 


 뿌연 미세먼지가 흡사 물안개처럼 가시거리를 더 좁혀오자 먼지라는 자각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도 같았다.


'정말 여유로운 기분인데...? 그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하는 거지...'


 몇 해 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인생이 흘러갈 수 있게끔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매일 아침 온 포커스를 긍정적인 에너지에 맞추고 지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브루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은 가사는 슬프지만 내 마음을 한층 편안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몸을 통해 뭉글뭉글 발산되려는 게 느껴질 때쯤, 불현듯 내가 타야 할 마을버스가 전 정류장에서 내가 가야 할 정류장으로 향해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1초...2초...3초가 지나자 다음 정류장을 향해 달려가는 마을버스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고 이어폰을 신경질적으로 빼낸 나는 걸어서 30초 남짓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본능적으로 내달렸다.


"잠깐만요."


끼이이익-


"감사합니다."


 줄이 짧아 사람들을 빨리 태우고 가려던 버스를 겨우 잡아타 기사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박시한 트렌치코트 소매를 젖혀 힘겹게 시계를 봤다.


'6시 50분'


 늦은 시간도 아니건만 괜히 또 부지런하게 버스를 타버리고 말았다.





2.


 일종의 강박장애. 할 일을 미루고 있을 때 나타나는 마음이 초조한 상태.


 그 할 일이란 학생 때는 공부, 숙제, 등교시간, 시험기간,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한 집안일을 말했으며, 직장을 다니는 지금은 출근시간, 내 업무, 청소, 자기 계발이 그에 해당되었다. 출근시간엔 학생, 직장인 너나없이 바쁘기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집에 앉아 그런 러시아워에 만원 버스를 타 시달릴 걱정을 미리 하는 것이 싫었다. 8시에 버스를 타도 출근시간을 맞추기엔 충분했지만 8시까지 집에서 매 분 매 초를 체크하며 만원 버스 타기 40분 전, 35분 전, 30분 전... 그러다 잠깐 딴짓하곤 또다시 20분 전, 18분 전, 이렇게 시간을 체크할 게 뻔했다. 


 그게 나니까. 차라리 마음 편히 러시아워를 피해 좀 더 일찍 회사 가겠노라 마음먹고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더 빠르게 출근한 지 2년째이다. 그렇다고 빠른 출근길이 마냥 마음 편한 것도 아니었다. 회사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누구보다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야 마음이 편했으며 보도 위 갈라진 틈이 만들어 낸 선이나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전봇대를 기준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차보다 그 기준을 1초라도 아니 0.01초라도 먼저 발걸음이 닿아야 마음이 편했다. 마치 도로 위를 달리는 차와 경주를 하듯이. 내 기준선보다 도로를 달리던 어떠한 차라도 먼저 도착한다면 꼭 뭔가가 불길한 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마음이 불편한 느낌. 


 기분과 시비가 붙은 느낌이랄까? 나만의 쾌적한 아침을 망치고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쁜 기분이 나에게, '이래도 즐겁니?'하고 약 올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반복되는 아침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했고 그중 하나는 하늘을 보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인도 위 있는 선이 내 눈에 띄지 않게끔. 그러나 인간의 감은 눈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새 내 귀는 뒤에서 서서히 내 옆을 지나가려 다가오는 차의 소리를 재빠르게 캐치하여 하늘을 바라본 채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이어폰을 끼면 괜찮을까?' 해서 음악을 크게 틀고 하늘을 쳐다보고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자 시각과 청각을 지배당한 내 감각은 육감을 동원하여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차가 만들어 낸 바람을 느끼며 '넌 별 수 없어' 비꼬는 것 같았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땐 그 증상이 더 심해졌고 그런 날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회사 건물이 위치한 인도 쪽으로 내달리는 편이 나았다.


 이러한 증상은 어린 시절 하굣길에 짧은 다리 하나를 건너며 이상한 상상을 해댔던 것이 시초였다. 그 당시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된 건지, 어쩌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다리 위를 건너면서 2분 안에 다리를 못 건너면 아주 나쁜 일이 생기고 건너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쁜 일이란, 가령 북한이 쳐들어온다든지 갑자기 다리가 무너져 집에 못 갈 것 같다든지 지진이 일어나 다칠 것 같다든지 뭐 이런 허무맹랑하고 말 같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일종의 시간과 나는 내기를 한 것이다. 내가 이기는지 시간이 이기는지. 짧은 다리이긴 했어도 결코 2분이라는 시간이 다리를 건너기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고 시간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천천히 세보기도 했지만,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설령 시간 안에 통과한다 하여 성공한 만큼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시간 안에 도착했을 때의 그 안정감. 그래서인지 그 다리를 건널 때면 그깟게 도대체 뭐라고 난 온 힘을 다리에 빡 주고 최대한 빠르게 목표한 지점까지 걸었고 그렇게 그 동네에서 20년을 살았다.  세월이 흘러 난 누군가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가 강박장애인 거 아니냐며 병원에서 상담받을 것을 권유받았다.


'이런 게 무슨 정신병이라는 거야..?'라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날 저녁 호기심 반 진심 반 인터넷에 떠도는 스무 개 남짓한 질문 사항이 있는 강박장애 테스트를 해보았고 그 결과 대부분의 질의사항에 체크표시를 남발하다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상담받아보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사실 이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상담받을 것을 권유받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테스트일 테니. 그 후에도 몇 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 역시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


'그거 강박증 아냐?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이상한 행동인 거다. 적어도 내가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그 소수 사람들에겐. 그래서 그 이후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진 않았으니까.





3.


"혹시 금주 선적분 문제 되는 거 있나?"


 같은 부서 팀장님이 퇴근 전 분주히 책상 정리를 하며 약속시간이 늦었는지 자꾸 시계체크를 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금요일...?  금주 선적분...? 잠깐 내가 선적 체크를 했었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금주 선적현황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늦어도 수요일쯤 각 해외 서플라이에 선적 체크 메일이 나갔어야 했다. 그리고 서로 피드백에 오고 가고 지금쯤, 문제 되는 선적물에 대한 Plan B라든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보고가 이루어졌어야 맞는 건데  그런 건데 나에겐 Plan B라든지 어떠한 보고라든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식은땀이 두피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는 지끈지끈하고 금방이라도 실신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고 나에겐 그 어떠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에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신디?"


 퇴근 준비가 다 되었는지 가방을 고쳐매며 대답을 재촉하는 팀장님.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짜증도 묻어 나왔다.


"저...잘...확인해보겠습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금요일 오후 불금을 앞두고 내가 너무 정신을 놓았었나. 나에 대한 한심함이 그리고 이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직 확인 안 됐어?"


 여전히 몇 시인지 시간을 체크하며 나무라는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꽂히는 기분이다. 모든 똑 부러지진 않아도 일 년 52주 중 휴가 기간을 제외한 최소 매 48주 동안을 해오던 일인데, 그걸 까먹었다는 게 도저히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 신입도 아닌 나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 당장 전화 돌리고, 문제 있음 보고하고 나 먼저 일 있어서 들어간다!"


 이미 약속시간이 늦었는지 팀장님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사무실을 나갔다. 분명 아직 봄이라 말하기엔 쌀쌀한 날씨인데 온몸에 열이 확 오르며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키는 이 기분.


'정신 차리자.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해외 업체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독일 업체 중 금주 선적분이 가장 많은 업체 전화를 건다. 다급한 손은 자꾸만 엉뚱한 번호를 누른다. 시간도 없는데 끊고 다시 누르고 끊고 다시 누르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제대로 된 연결음이 들렸고 동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다음 해야 할 대화들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 들리는 신호 대기음은 유난히 길기만 하다.


[딸깍]


"Guten Tag!"


이 순간만큼 가장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독일어로 인사를 건네는 저 목소리로 '문제없어'를 말하길 바랄 뿐이었다.


"Hello, This is Cindy, How are you?"


 이 다급한 상황에 안부를 묻는 상투적인 인사말이 먼저 툭 튀어나왔다. 습관이란 무서웠다.


"I'm fine. Thanks. Cindy. May i help you?"


발랄한 목소리로 무엇을 도와줄까 묻는 그녀였다. 문제가 생겼다면 나올 수 없는 밝은 목소리에 내 질문 다음 이어질 그녀의 대답을 살짝 기대해 보았다.


" Acutually, I would like to check about this week's shipment. Is everything ok?"


'그렇다고 해. 문제없다고 해.' 그렇게 속으로 되뇌는 동안 긴 정막이 흘렀다. 그리고 어렵게 목소리를 내는 상대방.


"Cindy i told you. This shipment won't be shipped this week due to ill people in our dispatch department. What happened to you?"


그녀는 걱정 어린 그리고 동시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디스패치 부서에서 아픈 사람들이 많아 작업을 못 끝내 선적할 수 없다는 그 말을, 이미 다 끝난 그 상황에 대해 왜 생전 처음 듣는 듯이 전화하냐는 약간의 비꼼도 있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한 생각.


'이게 꿈이면 좋겠다. 어...? 이거 진짜 꿈인가?' 그 순간 온몸이 속박당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가위였다. 나는 여전히 강박증이 심한 직장인이라는 것을, 나에겐 악몽도 이런 업무 관련 꿈을 꾼다는 사실에 자다가 약간의 비속어와 함께 실소가 터졌다.





4.


 업무에 절여진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다. 반쯤 열린 수건 서랍장 안 수건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놓고는 내가 꽂힌 발라드 한 곡을 무한 재생 해놓는다.  약간의 에코와 함께 흘러나오는 김연우의 '이별택시'.


 어느새 가을이 되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은근슬쩍 가을 분위기에 정신을 홀랑 뺏긴 내가 며칠 째 듣는 노래다. 출근할 때도, 일찍 도착한 회사 건물 정원에서도, 퇴근길에도, 샤워할 때도 심지어 잘 때까지도. 올 가을이 지나도록 질리고 물리고 들어보자 다짐했건만, 매년 짧아지는 가을 날씨는 선선에서 쌀쌀로 바뀐 지 오래다. 아직 질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화장실 온 거울에 습기가 가득 머금어질 때까지 따뜻한 물에 온몸을 맡긴 채 듣는 이 이별택시는 정말 명곡이다.


 그러다 문득 쳐다본 세면대와 벽 사이 실리콘에 낀 조그마한 물 때가 거슬렸다. 모든 게 완벽한 나의 이 시간이 방해받고 싶지 않아 안 보이는 척 눈을 슬쩍 감아봤다. 노래의 클라이맥스 언저리에서 나의 감정은 고조되고 나의 불편한 마음도 같이 고조되었다. 결국 따뜻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샤워기를 짜증을 절제하며 끄고 대충 수건으로 툭툭 물기를 닦았다. 반자동적으로 세면대, 바닥, 변기에 세제를 찍찍 뿌리곤 박박 문질러 닦아 물 때를 벗겼다.  같이 화장실을 쓰면서 화장실 청소 한 번하지 않는 언니와 남동생을 속으로 욕하면서도 부지런히 솔질을 멈추지 않았다.


 성격이 절대 남다르게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유난히 신경이 꽂히는 곳 화장실. 방 안에는 며칠 전 다 먹고 그대로 화장대 위 올려둔 오만 우유곽이 올라와 있고 눈화장을 지운 솜이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을지는 몰라도 화장실은 그리 둘 수 없는 이상한 집착성 장소였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바깥일이 어지럽다는 말을 알게 된 이후 생긴 신종 신경성 강박인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을 세게 틀어 여기저기 메말라 타일에 붙어 있을 머리카락을 수압으로 밀어한 데 모아 버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일 회사에 있을 골칫덩어리를 변기에 흘러내리며 제거하는 듯한 상상을. 더럽게 엉켜진 머리카락을 휴지로 주워 변기로 넣으며 드는 께름칙한 기분과 골칫거리를 미리 제거하듯 내일 회사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미리 손 써놓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일의 나를 위한 작은 선물 같은 느낌. 그런 선물 같은 강박증을 즐기기라도 하듯 물기 자국 한 점 없이 깨끗한 거울을 보고 만족한 미소로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감싸며 화장실을 나섰다. '오늘도 수고했다'라고 자화자찬을 아끼지도 않았다.





5.


볼만한 책 좀 없냐며 씻고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킥킥거리는 나에게 묻는 엄마.


"책?"


침대 옆에서 가장 최근에 산 소설책을 집어 엄마에게 건네준 채, 또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엄마는 나에게서 책을 받아 들곤 방 좀 치우라며 빈 초코우유 곽을 들고나가셨다. 그때, 불현듯 생각난 듯.


"엄마, 책 접지 마!"


 방문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에 대고 목청을 높여 말하지만 아무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엄마. 난 행여나 책을 모서리를 접을까 급하게 침대에서 뛰어내려 졸졸 뒤를 쫓아나갔다.


"엄마, 책 접지 말라고."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이 재차 확인하는 내 질문에,


"계집애, 더럽게 잔소리 해대네."


하며 흘겨보며 책을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12년 전, 과학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과학선생님은 책을 볼 때 새 책처럼 보고 보관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 하다가 어느새 굳어버린 습관이었다.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사실 그 선생님에게 1년 내내 들었던 수업 내용 하나 기억나는 건 없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그 과학 선생님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선생님의 뿔테 안경과 쪽지시험 백점 맞았다고 상이라고 준 예쁜 모양으로 생긴 칼라 원소주기율표 그리고 딱 그 한마디가 다다. 심지어 그 선생님의 성함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싹둑 잘려나간 내 기억 속에 그 과학 선생님은 칼라 원소주기율표를 준 뿔테안경을 쓴 독서쟁이인데 그 이후 지금까지 내 습관의 한 부분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볼 때마다 문득하게 된다. 그 선생님과 모습을 한 번씩 떠올리며.


 그렇게 지대한 내 습관을 하나 떡하니 만들어 준 그 선생님을 수시 2차가 붙고 엄청 추웠던 겨울 무렵, 내 생의 첫 알바였던 엔제리너스에서 떡하니 마주쳤다. 난, 마치 정말 친했던 선생님을 만난 마냥 신나서,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갸우뚱거리는 고개와 함께,


"누구였지?"였다.


그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난 선생님 때문에 그날 이후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 날 변화시킨 장본인은 정작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생님, 저 3학년 때 선생님 옆반이었어요." 하며 내 이름을 말해주었고, 그제야 '아~ 아무개 짝꿍?' 하며 나를 누구 짝꿍으로 나를 인칭해 버리는 선생님에 무척이나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실망감에 시무룩하게 대답한 나는 계산만 도와준 후 커피를 딴 알바에게 넘기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 선생님 성함조차 기억 못 하면서 선생님이 거쳐왔을 수많은 학생들 중 날 기억하길 바란다는 게 이제와 생각하면 어린 생각이지만 그땐 그게 그리 서운했었던 씁쓸했었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그날 이후 책을 대하는 내 태도를 원래대로 되돌리지는 못했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았다. 행여나 책을 덮었을 때 유난히 벌어지는 곳이 생길까 항상 책 등 부분을 가운데로 고정시켜서 보며, 절대 책을 펼친 채 엎어놓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덮었을 때 뜨는 페이지가 생기니까. 내가 본 책은 내가 간직해야 직성이 풀리던 나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중3 때부터 읽어온 책들을 하나같이 새 책처럼 보관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 책이 엄마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엄마는 너무나도 무신경했다. 책을 펼친 채 엎어놓고 집안일을 보시는 건 기본이며 페이지 모서리를 책 반쯤 왕창 접어서 덮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난 페이지를 표시할 무언가를 찾지 못한다면 페이지 수를 외우거나 정말 아주 가끔 1~2mm 접는 게 고작이었는데, 엄마의 그런 습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러지? 어떻게 책을 접을 수가 있지? 새 책인데? 자국이 생길 텐데? 어떻게 아무 거리낌 없이 반을 뚝 접을 수 있지?' 하며.


엄마가 책을 접어놓고 덮을 걸 볼 때마다 하나씩 다시 피며 속으로 다짐했다.


'다신 빌려주나 봐라.'





6.


"김계장님, 우유 왔어요."


일주일에 우유를 5박스 총, 120개를 주문하지만, 그래도 금요일쯤이면 흰 우유가 한 두 개 남으면 다행일 정도로 사무실 사람들은 우유를 엄청 먹어댄다. 다들 평균 이상의 키를 가진 직원들이지만, 아직도 키가 크고 싶은 건지 하루종일 우유를 입에 달고들 산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시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금세 다 떨어진 우유에 어제 급히 우유를 시켰다. 후임과 도착한 우유 박스를 까며 탕비실 냉장고에 줄을 세워 넣고 있는데, 항상 한 템포 느린 후임이 내가 반쯤 채운 냉장고에 그제야 우유를 넣기 시작했다. 근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유를 자꾸 뒤죽박죽으로 넣었기에. 이미 박스에 반듯하게 정돈되어 들어 있는 우유를 꼭 저렇게 빨대 붙은 부분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하게 넣어야 하는 것인가. 굉장히 못마땅하지만 잔소리하는 사수라는 말이 듣기 싫어 냉장고에 넣을 우유를 가지러 간 사이 얼른 빨대 붙은 부분이 앞으로 오도록 잽싸게 돌려 넣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마구잡이로 넣어지는 우유들.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는 찰나 회사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유미 씨, 내가 마저 넣을 테니까 전화받아봐요." 


짧게 '네!'하고 전화받으러 제자리로 달려가는 후임을 잠깐 쳐다보곤 어느새 후임이 마구잡이로 넣어 놓은 우유를 돌려세웠다. 그리곤 나란히 줄 맞추어 자리 잡은 우유를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나도 이렇게 모든 일에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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