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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뚝이 Jun 21. 2024

요가, 요망한 녀석

요린이의 요가 수필 1화

요가를 시작하다

요가수업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거의 반강제로 시작되었다.

동네에서 저렴하게 수업하는지라 부담도 없었고,

당시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나는 별다른 선택지 없이 제안을 수락했다.


솔직히 가기 전부터 가기 싫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운동은 질색이었다.

잡생각이 뇌를 파고들어서 더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크로스핏처럼 "우아아아아아악"  하고 극단적으로 활기찬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더 도움이 된다 생각하였다.

그런 의심 가득한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따분하고 재미없던 첫 수업


수업에는 주로 5060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왔다.

나는 머쓱하게 엄마 옆에 자리 잡아 매트를 폈다.

선생님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셨고, 은은한 조명아래 수업이 시작되었다.


"양손 모으고 합장합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종교의식처럼 주고받는 낯선 인사에 나도 고개를 숙이며 동참했다. 수업은 몸을 푸는 동작에서부터 아쉬탕가, 태양경배자세, 반야사 등등 뭐라고 하는지 도 모르겠는 용어의 동작들로 이루어졌다.


나는 모태 각목이라서 손이 땅에 닿는 동작도, 고개를 숙여 정강이와 이마를 붙이는 동작도 전혀 하지 못했다.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이 없으니 재미는커녕 자괴감만 들었다.


또한, 여러 동작을 한 세트로 묶어서 그것을 5번씩 반복하는 지루한 루틴 때문에 수업시작 10분 만에 집에 가고 싶어 졌다.


아!  역시 요가는 나랑 안 맞나 봐. 그럴 줄 알았어.


수업에 집중을 못하니 자연스레 잡생각이 들고, 마지막 단계인 사바아사나(누워서 명상하는 편한 자세)를 할 때도 머릿속엔 온통 현실의 근심걱정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요가에 전혀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출석하는 불량학생이 되고 말았다.


요가의 맛을 알아가다.

그렇게 불량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한 달을 보냈다.

다음 달 수업을 등록할까 말까 하다가...  등록해 버렸다.

우연히 뻗은 손에 의해.,


어느 날, 득 집에서 허리를 숙여 바닥에 손을 뻗어보았는데  손이 땅에 닿는 것이었다.


"어... 뭐지?"


불량학생에게 주는 사탕 같은 건가?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신기해서 한 번, 또 한 번 허리를 숙여보았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진짜 손이 닿고 있었다.


요가가 말 그대로 "요며들었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마침 그만두려던 차였는데, 요가는 참으로 깜찍하게 내 발목을 잡고 한 달만 더 다녀보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목표를 세웠다. 일주일 한 두 번 가는데도 나는 달라졌다. 그러면 매일 나가면 어떻게 될까?


매일 요가 도장을 찍다

그렇게 매일매일 요가를 나가게 되었다.

내 마음가짐도 사뭇 달라졌다.

요가를 의심하고 배척하던 마음에서, 나의 뻣뻣 몸을 구원해 준 요망한 운동으로 여기게 해 주었다.


여전히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내가 제일 젊고, 내가 제일 뻣뻣하지만...  쭉쭉 펴지는 근육들의 통곡을 느끼며 매일매일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어느 때는 알이 배길 정도로, 요가는 참으로 독한 운동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꾸준히 다녔다. 여름이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집으로 돌아갈 때,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갈증을 씻어 내릴 때, 내 우울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요가는 인내다

더욱 큰 변화는 요가를 더 이상 운동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가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요가는 수련이자 인내이다.


앞서 말했듯, 요가에서는 여러 동작을 한 세트로, 또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는 특징이 있다.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장부터 시작해서 합장으로 끝나는 그 지루한 반복의 과정에서 나는 마치 108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동작 한 동작, 성의를 담아 완수하면 마치 내 소망을 누군가 사랑스럽게 여겨 그것을 이루도록 도와줄 것 같았다. (나는 무교이다. 그 존재가 신인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와줄 것 같은 든든함이 든다)  


또한 그 일련의 동작들을 또다시 반복, 반복하는 과정에서 드디어 '인내'를 배웠다.

같은 동작과 같은 패턴이 지루해도 버텨라.

지루해도 반복해라.

지겨워도 끝을 보라.


세트를 몇 번씩 수련하면, 끝에는 결국 해냈다는 마음과 함께 뭐든 잘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은 힘까지 얻어낸다.


요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헬스나 크로스핏 등 다른 스포츠들은 폭발적인 힘을 순간적으로 내거나, 세트별로 짧은 시간을 가져가며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요가는 한 동작을 5분 이상 유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명상도 요가 수련의 일부분이다. 정신과 육체 모두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잡생각 투성이던 내가 이제는 누워서 사바아사나를 할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첫 만남은 첫인상이 별로였던 소개팅 같았지만, 이제는 요가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난 뻣뻣하고,  여전히 할 수 있는 동작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난 요가에서 인생을 배운다. 요가가 그래서 좋아졌다.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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