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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이인애-인조인간 AI》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인조인간 AI〉

多情 이인애


물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한다

턱 빠진 인간이 마신 허세 한 사발

들이켤수록 추락하는 무중력 품격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타는 목마름


실핏줄 없는 동공엔 눈물이 없다

개도 안 물어 가는 돈을 위해

습자지 한 장보다 얇은 명예를 위해

솜뭉치보다 가벼운 권력을

붙들기 위한 몸짓에 배인 똥냄새


언제부턴가 이 땅엔 사람은 없고

주인 무는 개들만 짖고 있다

내부총질로 자유를 갉아먹는 개떼들

그들은 모두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스무한 세기 최악의 졸작 인간형 AI 로봇




〈 사람의 껍데기를 쓴 로봇들에 대하여〉

박성진 문화평론가



물 없는 바다에서 뛰어내리는 인간의 허세

시인은 ‘물 없는 바다’라는 난센스의 물리학으로 인간의 허세를 뒤집어엎는다.

해학의 핵심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말하는 능력인데, 바로 그 기법이 이 첫 연에서 터진다.

바다엔 물이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지워버리자, 허세는 더 이상 가릴 옷이 없다.

턱이 빠질 만큼 과하게 벌린 입, 들이켤수록 추락하는 품격, 시인은 인간이 만든 자기 무중력의 구덩이를 웃음처럼, 그러나 치명적인 웃음으로 쏟아낸다.



눈물 없는 동공과 종잇장 명예

해학은 때때로 잔혹하다.

‘실핏줄이 없다’는 묘사는 인공 지능처럼 생명력 없는 눈동자를 그리며, ‘개도 안 물어 가는 돈’이라는 표현은 욕설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든 구조에 대한 유머러스한 지적이다.

권력과 명예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솜뭉치처럼 들어 올려 공중에 흔들며 비웃는 조롱의 춤으로 변환시킨다.

얇은 업적, 가벼운 권력, 비루한 욕망은 여기서 모두 풍선껌 같은 존재가 되고, 시는 그 풍선을 손가락으로 톡 터뜨리듯 묘사한다.



사람 없는 땅, 개들만 짖는 풍경

해학의 힘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시인은 “사람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허무한 철학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주인을 무는 개들, 즉 권력과 이익을 향해 서로의 발목을 물어뜯는 기괴한 군상들이다.

해학은 원래 슬픔의 형제다.

웃음의 뒤에 숨어 있는 깊은 탄식이 바로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내부총질의 풍경을 향한 풍자

이 시의 가장 날카로운 칼은 ‘내부총질’이라는 말이 부르는 비극과 곡예적 웃음이다.

해학 평론은 이 단어의 구조를 보면 더 잘 이해된다.

총을 적에게 쏘지 않고 같은 사람에게 겨눈다는 뜻은 공동체의 붕괴이자 정신적 자살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맹렬한 비난으로 쓰지 않는다.

대신 ‘개떼’라는 동물적 이미지에 실어 동물원 관람처럼 묘사하여, 오히려 더 아픈 웃음을 만든다.

이것이 해학의 묘미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로봇

마지막 구절은 해학이 어떻게 현대 사회를 꿰뚫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감정은 없으나 욕망은 있는 존재, 양심은 없으나 계산은 빠른 존재, 공동체의 책임은 없으나 이득에는 민감한 존재이다. 바로 지성과 야만이 뒤섞인 괴물이다.

시인은 이것을 AI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을 조롱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해학이 아니라 시대의 재판장이다.

웃음은 끝나지만, 뼈는 남는 문장이다.



해학의 구조와 문장의 향기

이 시에서의 해학은 ‘웃음 만들기’가 아니라 ‘웃음 뒤의 진실을 드러내기’다.

웃음에 빙자한 사회비판, 비유의 뒤에 숨은 날카로운 시대 인식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비로소 해학이 한국 문학의 전통이자 현대의 윤리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왜 이 시는 웃기면서도 아픈가

해학의 진짜 힘은 웃는 순간에만 드러나는 고통이다.

시인은 욕설을 하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고, 대신 상황을 비틀어 보여줌으로써 우리 마음속의 ‘정직한 불편함’을 끌어낸다.

현대인은 허세를 마시고, 명예를 얇게 인쇄하며, 권력을 솜처럼 움켜쥔다.

이 모든 구절이 우리를 향한 풍자이다.

웃지만 찔리고, 허허 웃다가 갑자기 가슴이 싸늘해진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가진 문학적 완성이다.



인조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

여기서 인공지능 인간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 상태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없고, 고통도 없고, 책임도 없는 존재.

시인은 인간이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시대를 비추며, ‘AI’라는 단어에 도덕적 아이러니를 심는다.

시대의 거울이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

“과연 인간은 아직 인간인가?”

시인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말대신 풍자, 해학, 이미지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 안에서 오래, 아주 오래 울린다.

해학의 웃음은 잠깐이지만, 해학의 깨달음은 오래 남는다.

이 작품은 그 사실을 가장 정교하게 증명하는 시적

해학 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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