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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서재용 시인-그리운 어머니》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그리운 어머니〉


서재용 시인


그날처럼

봄비 나린다.

추적추적 내린다.


봄꽃들도 슬픔을

아는지 고개 떨군다.

아, 하늘소풍 떠난 어머니…


학처럼, 선녀처럼

고고한 삶은 아닐지라도

하얀 목련처럼 순결했던 삶.


홀연히 떠나며 흘린 눈물,

父情보다 더 엄격했던

한 서린 母情의 세월.


바람결에 새긴

짧은 편지한 줄,

더욱 서럽고 애달프다.


나 홀로 새장 속에 갇힌 듯

母情에 몸부림친다.

먼 산 뻐꾸기 구슬픈

悲歌뿐…


애달픈 마음,

눈물인지 빗물인지

한없이 젖고 또 젖는다.


**************


* 어머니 4주기 추모일에

이 拙詩를 바칩니다.


2024. 6. 27

Written by James


〈시작 후기〉


사는 동안 어찌 좋은 날만 있으리.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힘들고 마음 아플 땐

그 누구의 위로보다

어머니 따뜻한 情이 그립다.


*************


박성진 문화평론가



- 서정의 첫 장 - ‘봄비’의 시간성과 애도의 기억


시의 첫 행에서 “그날처럼 봄비 나린다”는 문장은 시간의 문을 연다.

여기서 ‘그날’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사망(逝別)의 시간, 즉 존재가 사라진 순간의 기억을 의미한다.

봄비는 원래 생명의 은유이지만, 여기서는 “추적추적”이라는 의성적 감각을 통해 슬픔의 리듬으로 변한다.

시적 화자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던지며, 봄비는 어머니를 향한 회귀의 통로”라는 정서적 기호를 만든다.


자연의 감정이입-- 봄꽃 또한 ‘애도자’가 된다


“봄꽃들도 슬픔을 아는지 고개 떨군다”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이 장면은 애도의 공동체화다.

인간의 슬픔을 자연이 함께 견디는 시적 설정은 한국적 정서에서 매우 깊은 뿌리를 가진 상징이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내 슬픔이 자연을 흔들 만큼 크다”가 아니라,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 슬픔으로 물들어 있다”라고 조용히 고백한다.

시적 시선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자연으로 투사된 감정임을 알 수 있다.



‘학’과 ‘선녀’, 그리고 ‘하얀 목련’--어머니의 상징학


학과 선녀는 동아시아 미학에서 고결한 존재, 즉 속세를 초월한 인물을 뜻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고한 삶은 아닐지라도”라고 하여 현실의 어머니를 다시 끌어다 놓는다.

이 절제된 표현은 매우 한국적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하얀 목련처럼 순결했던 삶”은

어머니의 생애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는 시적 이미지다.

목련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피어 있을 때의 고요함과 단정함이 있다.

시인은 ‘어머니의 전 생애’를 목련의 미학으로 압축해 낸다.



‘엄격한 母情’ --모성의 양면성에 대한 성찰


“父情보다 더 엄격했던 母情의 세월”이라는 문장은 매우 깊은 진술이다.

한국의 전통적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멀리서, 어머니의 사랑은 가까이서 주어진다.

그러나 가까운 사랑일수록 더 엄격할 수 있다.

그 엄격함은 미움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에서도 비롯되었다.

시인은 어머니의 삶을 ‘순결’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그 속에 고된 책임, 억눌린 세월, 인내의 깊이까지 함께 읽어낸다.

이 부분에서 시의 정직함이 가장 깊게 드러난다.


‘바람결의 편지’--부재의 시대에 남는 것은 결국 ‘한 줄’


짧은 편지한 줄이 “더욱 서럽고 애달프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실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남겨진 언어의 유산을 의미한다.

사람은 떠나도, 남겨진 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한 문장이 시인을 시간 밖의 시간으로 이끌고,

그 문장이 부재의 공백을 상징하는 형상화된 그리움이 된다.

이 대목은 시적 이미지의 절정을 이룬다.


‘새장’의 상징- 자식의 죄책감과 존재의 갇힘


“나 홀로 새장 속에 갇힌 듯 母情에 몸부림친다.”


새장은

자유의 상실,

떠난 존재를 향한 무력감,

남겨진 자식의 죄스러운 마음

이 모든 정서를 한 번에 담는 비유다.


여기서 새장은 세상이 아니라 화자 스스로의 마음이다.

어머니 없이 살아가는 ‘낯선 시간’ 속에서,

자신이 갇힌 존재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절절한 고백이 드러난다.


‘뻐꾸기 비가(悲歌)’--- 외로움의 외부화


뻐꾸기 울음은 한국 서정시에서

그리움, 상실, 귀환하지 못함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화자는 멀리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통해

자신의 처절한 정서를 외부로 흘려보낸다.

뻐꾸기의 노래는 곧 시인의 울음이다.

시인은 자연의 음성을 자신의 내부통증과 결합시켜

고독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존재와 감정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말은 극도로 단순하지만 강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한없이 젖고 또 젖는다.”


여기서 젖는 것은 옷이 아니라 영혼이다.

자기 확신-

자기 분별-

자기 해석이 모두 무너진 상태.

눈물과 빗물의 구분이 흐려지는 장면은

애도의 절대적 순간,

곧 ‘슬픔이 외부 세계를 통째로 잠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시 전체의 정서를 봉합하면서도

독자의 가슴 깊은 곳까지 물결처럼 파고든다.


시후기(詩作 후기)에 드러난 마지막 고백- ‘어머니는 위로의 원형’


시적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을 시인은 후기에 고백한다.

“힘들고 마음 아플 땐

그 누구의 위로보다

어머니 따뜻한 情이 그립다.”

이 짧은 말은

시가 가진 정서의 뿌리를 정확히 밝혀준다.

즉, 이 시는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라

‘상처의 회복 불가능성’을 담은 진실한 기록이다.


어머니는 단순한 가족을 넘어,

인생의 모든 위로가 돌아가는 최종의 항구(港口)이자

존재의 원형이다.

시인은 그 원형을 잃은 뒤에야

자신의 삶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이 바로

이 시가 일반적인 추모시를 넘어

보편적 공감의 층위로 올라서는 지점이다.


서재용 시인의 〈그리운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단순한 신화가 아닌

‘현실의 고단한 순결’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정직하고 깊다.

이 시가 가진 힘은

큰 문장이나 화려한 기교가 아니다.

상실을 견디는 한 인간의 목소리가

압축된 감정을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는 데 있다. 간절하고 절제된 언어는

읽는 이의 심장에도 ‘봄비’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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