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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사위환 시인-혹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사위환 시인

<혹한>


살을 에는 바람이 스쳐도

어디선가 작은 온기가

내 마음을 다독인다.


혹한은 매섭지만,

그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따뜻한 사람 하나가

오늘을 견디게 한다.



사위환


***혹한***


박성진 문화평론가


혹한이라는 존재의 배경


이 시 속의 혹한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다.

삶에서 한 번쯤은 찾아오는 급랭의 시간, 마음이 금세 얼어붙는 순간을 의미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온도가 뚝 떨어질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무얼 붙들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한은 고통이 아니라, 인간을 깊은 자리로 이끄는 문턱처럼 놓여 있다.


바람의 스침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조건


“살을 에는 바람”이라는 말은 감각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근본을 건드린다.

바람은 생을 스치는 타자(他者)와도 같아,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깨우침을 준다.

스침 하나에도 상처받는 것이 인간이고, 그 상처를 느끼는 만큼 또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시인은 그 연약함을 담담하게 밝혀 보인다.


작은 온기라는 구원의 방식


혹한을 막아서는 힘은 언제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시인이 말한 “작은 온기”는 연약하지만, 인간을 다시 숨 쉬게 하는 기적 같은 힘을 품고 있다.

눈에 띄지 않는 배려, 오래된 말 한 줄, 잔잔한 손길 하나가

혹한의 계절에서 마음을 붙들어주는 진짜 온기다.

작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멀리 번진다.


혹한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사람 하나


인생의 추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빛과 어둠을 분별하게 된다.

따뜻한 사람 하나가 왜 그렇게 귀한지, 혹한의 계절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인연도,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는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과 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자연히 갈라진다.

시인은 그 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드러낸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견디는 방식


“오늘을 견디게 한다”는 문장은 이 시의 가장 현실적인 고백이다.

인간은 늘 내일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늘’이라는 얇은 하루를 하나씩 건너가며 존재를 지탱한다.

거창한 각오보다 한 사람의 온기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견딤은 체념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어주는 윤리이다.


혹한과 온기의 변증법


추위가 깊을수록 따뜻함은 더욱 분명해진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또렷해진다.

혹한이 없다면 온기는 그저 평범한 감각으로 흘러가 버릴 것이고,

온기가 없다면 혹한은 인간을 고독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둘은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드러내는 짝이다.

시인은 이 대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구조를 고요히 밝혀낸다.



혹한을 건너는 인간의 윤리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온기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다.

혹한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은 사람을 살린다.

한 사람의 온기가 하루를 건너게 하고,

그 하루들이 쌓여 인생의 결이 만들어진다.

혹한은 매섭지만, 인간의 온기는 그 혹한을 견딜 수 있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빛이 된다.

이 시는 그 빛의 기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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