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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전홍구-겨울의 문턱에서 동백이 웃는다》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겨울 문턱에서 동백이 웃는다


전홍구 시인


찬바람이 나뭇잎을 하나둘 떨어내고

가지들은 마침내 자기의 뼈를 드러내며

겨울의 이름을 조용히 받아 적었다


그 틈에 동백은 드디어 때를 만난 듯

빨간 입술을 살짝 내밀며 싱거뱅크

추위조차 잊은 듯 고개 내밀어 보였다


모두가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릴 때

그는 푸른 잎을 지키고 꽃을 올리며

잎은 속에서도 남는 빛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어붙은 날에도

어김없이 피어오른 그 붉음을 보고

때가 되면 풀릴 것이라는 걸 안다.



<겨울의 문턱에서 피어오르는 ‘존재의 불씨’>


박성진 문화평론


겨울의 침묵에 새겨진 붉은 첫 문장


이 시는 겨울의 적막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 적막 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첫 문장’을 끄집어낸다. 겨울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이 닫히고 떨어져 나가는 계절이지만, 시인은 그 빈자리에 조용히 ‘동백’이라는 색감을 들여놓으며 계절의 서사를 다시 쓴다. 겨울이 사라짐의 계절이라면, 동백은 그 사라짐을 뚫고 등장하는 첫 목격자다. 그 첫 등장만으로 이미 독자는 계절의 구조가 뒤집히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나뭇잎의 이별이 만들어낸 투명한 무대


첫 연의 이미지는 “뼈를 드러낸 가지”라는 결정적 구절로 깊어진다. 자연은 본질을 감추던 옷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가장 근본적 형태로 드러난다. 이 표현은 인간이 외부의 장식을 제거하고 ‘내면의 뼈’를 드러낼 때와도 같다. 시인은 겨울의 차가움을 묘사하는 대신, 계절이 근본을 회복해 가는 통과의례처럼 서술한다. 이 투명한 무대 위에서야 비로소 동백의 붉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동백의 붉음, 늦게 그러나 정확하게 찾아오는 광채


두 번째 연에서 동백이 “때를 만난 듯” 나타나는 순간은 이 시의 감정 축을 이룬다. 동백의 붉음은 여름꽃의 화려함과도 다르다. 겨울꽃은 잘 보이기 위한 붉음이 아니라, 사라짐과 무채색을 견딘 뒤 비로소 발현되는 내적 힘의 색이다. 시인은 ‘추위를 잊은 듯한 꽃’이라는 표현을 통해, 생명은 외부 조건을 초월하는 순간 비로소 본질적인 색채를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다.



잃음의 계절 속에서 드러나는 ‘남는 빛’의 윤리


세 번째 연에서 작품의 사상적 뼈대가 드러난다. “모두가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릴 때”라는 문장은 겨울을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닌, 인간 존재의 결핍과 상실을 은유하는 장면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그때 동백은 “푸른 잎을 지키고 꽃을 올리며” 반대로 남는 것, 견디는 것, 지켜내는 것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존재의 윤리’에 관한 시인의 고백이다. 상실의 계절일수록, 지켜지는 작은 빛은 더 선명해진다.



시인의 시선: 외부 온도보다 뜨거운 내적 온도


네 번째 연에서 시인은 동백의 붉음 앞에 선 인간의 깨달음을 드러낸다. 겨울의 혹한은 가장 견고한 마음도 얼어붙게 만들지만, 동백은 그 얼음 위로 피어나 겨울을 다시 정의한다. 그것은 자연이 제공하는 응답이 아니라, 인간에게 건네는 하나의 ‘온도’다. 추위 속에서도 피는 꽃은 계절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계절을 견디는 방식으로 계절을 초월한다. 이는 인간이 외부 조건을 바꿀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내적 온도의 상징이 된다.



‘때가 되면 풀릴 것이다’라는 믿음의 출처


마지막 연은 단순한 희망의 선언이 아니다. 자연의 순환에서 얻은 깨달음이 삶의 순환으로 옮겨 붙는 순간이다. 동백은 무턱대고 피지 않는다. 더 늦어도 좋고, 더 추워도 좋다는 듯, 제시간에 정확히 피어난다. 시인은 이 정직한 자연의 시간을 통해 “때가 되면 풀린다”는 삶의 원리를 말한다. 그것은 무작정의 낙관이 아니라, 근거 있는 기다림이다. 견딘 만큼 도달하는 시간, 이것이 동백이 주는 철학이다.


<동백의 상징성>

상처를 누르는 붉은 봉인


동백은 한국 문학에서 여러 상징을 지녀왔다. 강인함, 외로움, 침묵, 피어도 지지 않는 꽃의 희비극. 이 시의 동백은 그 상징들을 떠올리면서도, ‘웃는다’라는 표현으로 새로운 결을 부여한다. 웃음은 고통을 이기고 나오는 얼굴이다. 동백의 웃음은 계절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포용하는 미소다. 겨울의 고통을 꿰뚫되 그 고통 위로 붉은 봉인을 덧대는 행위가 바로 이 시의 동백이다.



존재를 깨우는 미학, 겨울 속 붉은 리듬


시 전체의 리듬은 ‘겨울의 느린 호흡’과 ‘동백의 빠른 점등’이 대비되며 이루어진다.

이 리듬은 인간의 심리적 계절에도 그대로 대응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텅 비는 시간, 말이 얼어붙는 시간, 잎을 다 떨궈내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때 가장 먼저 깨어나는 것은 외부의 온기가 아니라 내면의 작은 불씨 하나다. 동백의 꽃은 그 불씨를 의인화한 존재로 그려지고, 시인은 그것을 미학적 도약으로 재구성해 내었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유의 꽃’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자연 묘사에 머물지 않고, 겨울이라는 계절을 존재적 사유의 문제로 가져온 데 있다. 떨어져 나가는 잎과 새로 피는 꽃 사이에서 시인은 한 가지 사실을 밝힌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며, 피어남은 기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제 자리에 찾아오는 시간의 한 조각이다. 동백의 붉음은 그 시간의 안내자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계절 너머의 힘’을 깨워주는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자연시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견디는 삶의 겨울을 통과하게 하는 철학적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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