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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김석인-오른 자는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김석인 시인


〈오른 자는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불만은 위를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탓이오

오만은 아래를 보고 위를 보지 못한 것이니

이는 곧 비우지 못한 욕심과 낮추지 못한 교만으로부터

자아를 다스리는 슬기가 부족한 탓이라


지혜로운 자는 남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볼 것이며

어진 자는 헐뜯기보다 칭찬을 즐길 것이며

현명한 자는 소리와 소음을 가릴 줄 알 것이로되


반듯한 마음 옳은 생각으로 곧은길 바른 길을 걷노라면

뉘라서 겸손의 미덕을 쌓지 못하리오


마음의 평화는 비움이 주는 축복이요

영혼의 향기는 낮춤이 주는 선물이니

비우고 낮추는 삶은 곧 내 안에 천국을 가꾸는 일입니다.



평론 — 철학적·윤리적 사유의 완결


〈오른 자는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라는 제목은 곧 시 전체의 핵심 사상을 압축한다. ‘오른다’는 것은 상승·성취·명예·지위를 뜻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오른 자는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겸손의 철학이자, 인간 존재의 한계를 깨달은 지혜이다. 참된 오름은 내려옴을 전제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첫 연에서 불만과 오만을 각각 ‘위와 아래’를 보지 못한 시선의 결핍으로 정의한 것은 탁월한 심리적 분석이다. 불만은 위만 보고 나를 과소평가하는 자리에서 생기며, 오만은 아래만 보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자리에서 자란다. 결국 시인은 불만과 오만 모두 “자아를 다스리지 못한 영혼의 미숙”으로 귀결한다.


두 번째 연에서 시는 인간의 덕목을 차례로 명시한다. 지혜로운 자, 어진 자, 현명한 자. 이 셋은 모두 인간이 도달해야 할 윤리적 목표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자신을 먼저 본다. 이는 동양 사상의 근간이며, “성찰 없는 비판은 폭력”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어진 자가 칭찬을 즐긴다는 말은 ‘비난은 쉬우나 격려는 어렵다’는 인간의 도덕적 결핍을 지적한다. 현명한 자가 소리와 소음을 가려낸다는 구절은 오늘의 시대에 특히 깊게 와닿는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진실을 구별하는 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바른 길’과 ‘곧은길’을 제시한다. 이 길은 단지 도덕적 교과서의 길이 아니라 “올바름을 향한 살아있는 실천”이다. 길은 앎이 아니라 삶이다. 그래서 “겸손의 미덕을 쌓지 못할 이가 어디 있으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낙관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선을 향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희망의 신학이다.


마지막 연은 시 전체의 영혼이다. “마음의 평화는 비움이 주는 축복”, “영혼의 향기는 낮춤이 주는 선물.” 이 두 문장은 시가 철학을 넘어 영성으로 건너가는 순간이다. 비움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낮춤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존재의 품격이다. 비우고 낮추는 삶이 “내 안에 천국을 가꾸는 일”이라는 결론은 윤리와 신앙과 철학이 맞닿는 지점이다.


이 작품의 고귀함은 ‘훈계’가 아니라 ‘해방’을 말한다는 데 있다. 비워야 자유롭고, 낮춰야 높아지며, 내려와야 진정으로 오른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메시지가 아니라 인간 영혼을 향한 위로다. 이 시는 우리 시대의 교만과 소음 속에서 길 잃은 인간에게 조용히 말해준다.


“너를 크게 만들고 싶은가?

먼저 작아질 줄 알아라.”

그리하여 내려오는 길이 곧 더 높은 오름이 된다.

김석인 시인의 이 시는 그것을 잊은 시대에게 다시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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