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축구?

이상한 데이트와 뒤늦은 깨달음

by 토끼포케

“그럼 우리 얼굴이라도 볼래?”


‘썸’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 시절,

갑작스런 제안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운동도 잘했던 그 친구.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혹시 눈 마주칠까 두근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창가에 기대 앉은 모습이 멋져보였고

한 여자 아이를 못살게 굴던 같은 반 남자애를 혼쭐 내줬다는 소문은
그 아이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여자아이는 원래 여우 같은 애였으니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약한 척을 했으리라 난 확신한다.)


우리는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지만,
고백이나 연애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가
스스로도 어색하고 민망했던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졸업 후 나는 여중으로, 또 전학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안부를 묻고, 대화를 주고받다
“얼굴이나 한 번 볼래?”라는 말이 나왔다.


학교 다닐 때 매일 보던 얼굴인데도

‘얼굴이나 한 번’이라는 말이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질 줄이야.

아마 너무 오랜만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내 방 옷장에 달린 작은 거울 앞에서
틴트를 바르고, 밝은 느낌의 옷을 입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그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예뻐보이고 싶었다.



영화관에서 만난

그 친구는 여전히 멋졌다.


조금 굵어진 얼굴, 훌쩍 큰 키.
그날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러브신이
어색하고 민망했던 감정은 또렷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동네를 걸었다.
손을 잡지도 않았고,
말도 많이 하지 않았고,
가벼운 농담과 어색한 웃음만 오갔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 좋았다.



계속 걷다보니 학교 운동장이 나왔다.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법 큰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말했다.

“잠깐만.”


그리고는 운동장으로 뛰어들어가
갑자기 공을 몰며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



뭐지...?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3분이 흘렀다.


‘그냥 이렇게 끝내자는 건가?’

‘나랑 노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없었나?'

'’막상 만나보니 별로였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서운한 맘, 부끄러운 맘에 괜히 눈물이 났다.

괜히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왜 갔어?”


나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이상한 데이트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뒤로도 그 남자아이와 연락은 이어졌지만,
이미 마음이 식은 나는
더 이상의 진전은 만들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들은 매일 공을 가지고 논다.

아무 이유없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툭툭 공을 차며 공과 한몸이 된다.



공만 있으면 혼자서도

둘이서도 참 즐겁다.


어느 날 갑자기

열일곱살 그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서운함과 허무함으로 가득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공만 보면 정신없이 달려가는 아이들.

눈이 먼저 반응하고,
발이 따라가고,
머리는 나중에 생각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은
공을 찰 때 누구보다 진지하고,
자신 있는 기술을 보여줄 땐 늘 외친다.
“엄마, 이거 봐요!”


그때 깨달았다.


혹시

그날의 그 친구도
나에게 축구 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만약 내 앞에 멋진 피아노가 있었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피아노 치는 나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에겐 공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다르다.

‘나 축구 잘해! 잘 봐줘!’
그 마음을 말 대신 행동으로 전한 걸 수도 있다.


말로 설명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마 나의 방식일 것이다.



그날,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축구 잘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잘 봐줘.”



아들을 둘이나 키우며 살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남자아이들은 때로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걸.



서툴렀지만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한 관심일 수도 있었다는 걸.



지금
그 친구가 다시 내 앞에서 공을 몰며 달려간다면


나는 아마
정말 멋지다고 말해줬을 것 같다.







물론 어색한 김에 그냥 공이 보여서 달려갔을 가능성도 아주 크다.

아들을 키워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