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도 예쁘게 말할 수 있다면

관계를 다룰 줄 아는 아이가 되길

by 토끼포케


AM 7:30

눈이 떠졌다.


휴일 아침,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행운이다.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으니까.

아직 아이들은 자고 있다.

곁에서 잠든 아이들은 참 사랑스럽다.

통통한 뺨, 살짝 벌린 입, 포근한 숨결. 살짝 내민 배까지도 참 귀엽다.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짐을 챙겼다.

낡은 가방에는 노트북, 휴대폰, 충전기를 넣었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엄마."

둘째가 일어났다. 부스스한 얼굴로 자기도 데려가 달란다.


이제 막 깬 아이의 눈빛엔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다.

무조건 항복이다.

할 수 없이 가방에서 노트북과 충전기를 꺼내고,

장바구니를 챙겨 식빵을 사러 나섰다.


6살 아이에게 세상 모든 글자는 재미있다.

가게 이름, 오픈 시간, 소비기한까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나하나 읽는다.


식빵, 형이 좋아하는 소보로빵, 자기가 좋아하는 뽀로로빵까지 담고, 샌드위치용 오이도 샀다.


돌아오는 길, 전화가 왔다. 잠에서 깬 첫째다.

전화기 너머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만 두고 엄마와 동생이 나간 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많이 속상했어? 정이가 너무 잘 자고 있어서 못 깨웠어."


"힝"


"정이, 미안해. 우리 이따가 같이 산책할까? 배드민턴 칠까?"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깨워서라도 데려올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 나갈래요."


"엄마 지금 거의 다왔어. 엄마가 지금 너무 덥고 힘드니까 우리 조금만 이따가 나가자."


"힝.. 싫어요.."


단단히 화가 난 첫째이다.


사실 얼마나 예쁜 마음인가.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하고 싶어하는 아들이라니!

몇 년만 지나면 정말 많이 그리워할 오늘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를 좋아해주는 아들이 참 고맙고 예뻤다.


하지만 계속해서 심통을 부리고 있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나도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마 덥고 습한 7월의 날씨도 한 몫 했으리라.


집에 도착하니 정이는 이불 속에 숨어 훌쩍이고 있었다.

한참을 달래주던 나도 뚜껑이 열렸다.


"엄마가 얼마나 더운 줄 알아?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네 요구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 기분도 생각해 줘야지."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툴툴거리며 에어컨을 틀고

부엌으로 가 밀린 설거지를 했다.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정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화를 낸 건 아닐까.

나는 조금 더 대화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이는 슬픈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물었다.

"지금 기분 어때?"

당연히 '안 좋아요'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 그래도 엄마가 달래주러 와줘서 좋아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또 녹아버렸다.


알고 보니, 정이는 엄마와 단둘이 아침 산책을 가는 게 소원이었단다.

동생이랑만 가는 걸 보고 질투가 많이 났다고.

맞다. 예전부터 주말 아침이면 꼭 단둘이 산책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 마음을 처음부터 예쁘게 말했더라면,

내가 아무리 피곤했더라도 한 번 더 힘을 냈을지도 모른다.


서운함을 예쁘게 말하면, 상대는 더 도와주고 싶어진다.


나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정이야, 엄마랑 산책하고 싶었지? 그럼 계속 툴툴거릴 것이 아니라 엄마한테 어떻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까?"


"엄마, 나도 산책 가고 싶어요."


"맞아. 그런데 만약 엄마가 힘들다고 하면?"


"음.. 그럼..

좀 나중에 가요?"


"그렇지. 거기서 센스를 더 발휘한다면...

'엄마가 힘드니까, 내가 집안일 도와줄게요. 쉬고 이따가 같이 가요.'

아니면

'제가 집에 오면 에어컨 틀어 놓을 테니까 쉬었다가 같이 가요.'

이런식으로 배려하며 말하면 엄마는 훨씬 더 기운이 났을 거야."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이 꼭 필요하다.

요구와 서운함도 예쁘게 말할 수 있다면,

상대는 더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때론 감동받기까지 한다.


반 아이들은 늘 체육 수업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일정 변경으로 강당을 못 쓰거나, 운동장이 젖어 체육 수업을 못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에이! 재미없어! 망했어!" 짜증을 내거나 투정을 부리는 대신,

"선생님이랑 하는 체육 수업 진짜 재밌는데 너무 아쉬워요! 지난번에 했던 놀이 다음에 꼭 또 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말 한마디에 나는 교실에서도 가능한 재미있는 활동을 찾아보게 되고,

날을 새로 잡아서라도 해주고 싶어진다.

결국 이 모든 것도 관계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서운할 때가 있다.

내가 정성껏 안내했던 내용을 충분히 읽지 않고

"왜 이런 건 안 해주시냐"며 다그치듯 말할 때,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도 부정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선생님, 많이 바쁘시지요. 지난번에 전달드렸었는데 안내파일 다시 보내드려요! 더운 날 건강조심하세요!"


이렇게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표현하면 상대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대부분 미안해하며 너그러워진다.


만약 여기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서로의 기억과 해석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결국 감정만 상하고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관계는 더욱 틀어지고 내 감정과 시간만 빼긴다.


그래서 나는 서운함을 느낄 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한다.


이 상황의 경우에는

이 사람에게 내가 예전에 전달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더 이상의 감정소모나 의미없는 대화가 오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에 나도 실수를 했을 때 이사람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내 서운한 마음을 더 세련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연습을 어릴 때부터 하는 것, 나는 그걸 교실에서 아이들과 계속해서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면, 교실이 무너지는 일도 훨씬 줄어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게 한다.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엔 더 잘 될 거야."


게임을 하다가 지면 "재미없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아 너무 아쉽다!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다음에 또 해요. 게임 준비해주셔서 감사해요!" 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 말이 오고 가는 교실은 분위기가 다르다. 마음을 예쁘게 표현하는 연습은 교실을 건강하게 만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며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관계 기술이다. 서운함도, 요구도 예쁘게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그게 결국, 진짜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지식을 다루는 기술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다룰 줄 아는 현명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요즘 엄마들이 이런 '관계력' 교육도 꼭 함께 해주면 좋겠다.



결국 오후 2시, 나는 아침에 가지 못한 스타벅스에 와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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