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랑할 수록 더 좋아지는 사이
"그런데 그렇게 오래 만나다 보면 설레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요?"
대학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동기 오빠에게 물었다.
당시 나는 짧은 연애를 끝낸 상태였고, 마주 앉은 오빠는 3년째 한 사람과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이 나는 참 신기했다.
그리고 항상 궁금했다.
설렘이 끝나는 데 어떻게 연애를 할까?
설렘이 식으면 사랑도 식는 줄 알았던 스물두 살의 나.
그런 나에게 오빠가 말했다.
"설렘은 없지만 훨씬 더 특별한 감정이 생겨."
설렘보다 특별한 감정,
그것은 무슨 감정일까?
언젠가 나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나에게도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동갑이지만 한 학년 위였던 그는
따뜻하고 유쾌하며 나를 많이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항상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었고
고개를 숙여 키를 맞춰 걸어주었다.
예민한 날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게 해주었고
복잡한 문제들은 단순하고 강력한 해결책으로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한결같은 그의 모습이 참 좋았다.
연애를 시작하며 나는 더욱 밝아졌고 단순해지며 그와 닮아갔다.
졸업과 함께 각자의 바쁜 시간을 견디며,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달라졌지만, 서로 다른 삶의 리듬 속에서 맞춰가는 일은 매번 새로웠다.
졸업, 군대, 취업
우리는 늘 함께 였지만 서로의 자리는 계속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게 되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긍정적이었던 그가 작은 일에도 흔들리던 모습
늘 내 이야기가 옳다고 맞장구 쳐주었던 그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던 모습
항상 나보다 똑똑했던 그가 제대 후 사회에 새롭게 적응해 가는 모습
그에게 원래 이런 모습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변한걸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위치가 바뀌면서
때로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닌 것 같았고
서로 실망하거나 싸우는 일들도 있었다.
그에게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했고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그리고 늘 웃음이 나왔다.
6년의 연애와 12년의 결혼생활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 없이 내 말을 듣기만 해주던 그는
이제 이사문제, 대출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든든한 남편이 되었다.
대학시절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내게 어쩔 줄 몰라하던 어리숙했던 그는
임신 중 손목이 아파 물병을 따지 못하는 나를 위해 출근 전 모든 뚜껑들을 따놓는 센스있는 남편이 되었다.
출산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펑펑 울던 모습,
아이가 태어나자 하루 아침에 아들바보가 된 그의 모습,
수유 중 잠든 나를 위해 아기 젖병을 잡아주며 잠든 모습,
청소, 요리, 빨래 서툴 던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
아들의 교육을 위해 단호하고 엄격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 등
지금 남편의 모습은
연애시절 내가 알던 남편과의 모습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
수많은 변화를 거치며 우리는 때로 서툴고 실망하고 싸울 때도 많았지만
그는 점점 더 단단해졌고, 나는 그 변화 속에서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변화를 위한 과정 속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도 서로에게 많았지만
기다림과 이해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그를 새롭게 알아간다.
그는 늘 변하고, 그 변화는 나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적의 '설렘'은 짧고 강렬했지만,
지금 우리가 함께 만드는 감정은 더 길고, 깊고, 두텁다.
장기적인 관계는 서로를 바꾸고, 성장시킨다.
너무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이 많은 요즘
장기적인 관계에서 오는 기다림과 이해를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아들에게도 찾아오길 바란다.
연애 뿐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 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우리 아들도 언젠가 그런 관계를 맺어보기를.
단순한 설렘을 넘어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깊고 따뜻한 관계를.
그게 꼭 연애가 아니어도 좋다.
친구, 동료, 배우자, 가족, 일
어떤 이름이든 좋다.
중요한 건 오래 함께하며 서로의 변화를 기꺼이 지켜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서툴고 요동치던 감정이
시간 속에서 편안하고 깊은 사랑으로 자라나는 그 경험을
우리 아들도 살아가며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에게 진정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남겨준 그 오빠는
3년째 만남을 이어가던 여자친구와는 대학 졸업 전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사람 일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으니 잘 살거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든 잘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