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했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 방황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내가 만든 틀에 나를 맞추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도 그랬고, 예전의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이고
똘망똘망한 눈이 참 예뻤던
한 남학생
이 아이는 6학년이었고
밑으로는 동생이 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그 아이에게 아낌없이 정성을 쏟았습니다.
무엇이든 유기농을 먹이고 좋은 옷과 학습 환경을 제공하며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마파두부를 먹고 왔다는 아이의 이야기에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낸 내 아들이 떠올라
괜스레 반성하게 되기도 했지요.
작은 체구였지만
단단하고 영리하고 똑똑했던 그 아이는
책을 좋아했고 여행을 많이 다녀 상식도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이 아이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의 그림자가 찾아온 걸까요. 아이의 시선에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스며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미워했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마른 자신의 몸을 싫어하며
자꾸만 밖으로 공격성을 드러냈습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예민하고 날카롭게 반응하자
주변 친구들은 서서히 그 아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걱정도 깊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키가 크고 싶어했고 운동을 잘 하고 싶어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말들이 가득했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점점 짙어졌습니다.
나는 그 일기에 빼곡히 답글을 달았습니다.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나와 너무 다른 이상을 쫒으며 외로워하지 말라고
지금의 내 자신을 바라봐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시작해보자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친구의 마음은 제게 너무나도 익숙했습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나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질투가 많았고,
무엇이든 완벽하지 못한, 서툰 내자신이 참 싫었습니다.
주변에는 잘난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춤도 잘 추는 그런 외향적인 친구들.
특목고에 진학하고 나서는 그 비교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나는 나의 장점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았고
상상 속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 안에 나를 끼워 맞추려 애썼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나는 나를 미워하기 바빴습니다.
각진 내 얼굴형, 무표정한 인상, 말라있지 않은 몸,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까지도
모두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목소리가 참 좋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스물 한 살 무렵에는 "여성스럽고 다정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좋았나? 무표정한 내게 여성스럽고 다정한 면이 있었나?
아, 내가 이런 면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때부터 내 안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내 꽃봉우리 속에 가지고 있던 꽃의 색깔과 모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밝고, 경청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센스, 예쁜 웃음,
조금 서툴지만 정감 가는 행동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이 큰 장점이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무대 위에서 뭔가를 멋지게 보여주는 것만이 매력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 시절
놓쳐버린 기회들과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보냈던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후회됩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꽃봉오리를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꽃이 피어날지는 저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장미로 만들어 놓고 그 장미의 모습이 되지 못한다고 우울해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색은 잊은 채,
나와는 전혀 다른 상상 속의 이상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나를 끼워 넣지 못해 슬퍼합니다.
그 슬픔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고,
세상과의 단절이나 외부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건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어른들이 겪는 우울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학창 시절이 아쉽습니다.
장점이 없다고 여긴 내 자신이 안타깝고, 그 시절 나를 미워했던 기억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도 이런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스스로의 고유한 매력을 찾지 못하고, 어딘가에 억지로 맞춰가며 방황하는 아이들.
그래서 지금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아이들을 보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민들레야, 왜 장미꽃을 틔우지 못해 울고 있니?
너는 예쁜 민들레란다. 보송보송하고 노랗고 따뜻하고 친근한,
바람에 날리는 씨앗까지 아름다운 민들레.
굳이 붉게 물들이려 애쓰지 않아도 돼.
너의 노란색을 더 개성있고 아름답게 만들어 보렴.
물결모양의 장미 꽃잎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작고 귀여운 민들레 꽃잎을 소복히 피워 보렴.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단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단다.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내 아들이 저처럼 스스로를 미워하며 후회하는 학창 시절이 아닌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더 당당하게 피어나는 시간들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