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떨어뜨려도 다시 집는 사람의 기록
내게 시작이라는게 없었다.
힘들었고 지쳤고 이 상황에서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은 언제나 우울했고.
나는 슬펐다.
그리고 책 두 권과 노트 2 권을 샀다.
한권의 노트에는 감사일기라 적고 또 한 권의 노트에는 저녁 일기라 적었다.
이것이 내가 시작한 처음 글쓰기다
나를 살리기 위해 초등학생 때 숙제로만 쓰던 일기를,
마흔이 넘어서야 스스로 처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일기가 10년 뒤,
나를 작가로 만들어줄 시작점이라는 것을.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하다는 세 줄을 적었다.
문장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한 줄이었다.
일찍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노트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정말 단순하고 심플한 내용이었다.
꾸밈도 없었고 화려함도 없었다.
그저 초등학생이 쓰는 수준이었다
매일 쓴 것도 아니었다.
나의 감사 일기를 보면 한 달 반 동안 안 쓴 날도 있고 세 달 동안 안 쓴 날도 있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 속에서 감사 일기장은 30 권이 넘는다.
나는 나를 두고,
두 달이 넘게 감사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정짓지않는다
10년의 시간 속에서 감사를 쓴 날짜를 두고 얘기한다. 그래서 나는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이다라고 정체성을 부여한다
지금도 네 감사 일기장은 크게 바뀐 게 없다.
여전히 단순하고 여전히 2달씩 쓰지 않는 날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감사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매일 했다가 아니다. 꾸준히 했다이다.
사람들은 흔히 꾸준히를 착각한다.
매일 하는 것으로.
매일 하는 것은 꾸준함의 대표 상징이 될 수 없다.
매일은 그냥 빽빽함을 나열하는 단어일 뿐이다.
꼭 백백백해야만 사람에게 성장이 일어나고 발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퐁당퐁당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허술하지만 지속한다는것은 성장한다는 감각을 느낄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급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오히려 여유가 생긴다.
역설은 왁벽함이 아니라 허술함에서온다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한 권 책을 집중해서 단 한번도 단 한 번도 읽은적이 없다. 월화수목금토,
읽고 싶은 책을 정해 놓고서는 학교 수업처럼 책을 읽었다.
한 줄을 잃는 날도 있었고.
세 줄을 읽은날도 있었고 ,진짜 많이 읽으면 한 단락까지 읽었다. 그게 고작이다.
나는 애써 완벽하게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그저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 조금씩 이 쌓여 나는 지금 글이라는 걸 쓰고 있다. 기승전결 서사가 있는 글말이다
저 짧은 문장 세 줄과 한두문장읽기로 끝냈던 책 읽기가 지금은 서사를 쓸 줄 아는 손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랑 조금 남달랐던 것은 책을 읽는 양보다 독서 메모 량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독소 메모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나는 그냥 나의 감정을 적었다
대박이다.
내 입에서 글을 읽다가 툭 튀어나온 한 마디를 적거나. 아니면 짧게 지나가는 나의 생각들 적었다
"음 이글은 잘 썼는데? 뭔가 짧은데 임팩트가 있어. "
요 정도로만 적었다. 거창한 것은 단 한 줄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단락이 읽기가 끝나면, 이 한 단락을 한문장으로 적어보곤 했다.
그러고선 이 한 단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곤 했다. 단지 그게 다였다.
아참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아니 두 가지가 더 있네. 핵심 키워드 1개에서 3 가지를 뽑아보고 나만의 글로 바꿔보곤 했었다. 그게 전부였다.
글을 일다보니 쓰고 싶어졌고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
시작은 했지만, 진짜 문제는 '지속'이었다.
막상 써 내려간 글은 생각보다 형편없었다.
문장은 어설펐고, 하루를 거르면 금세 손이 굳었다.
하트는 붙지않았고 방문자수는 저조했다
의욕은 쉽게 사그라들었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회의감이 드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한달뒤,
블로그는 접었다
몇년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한 기준을 들이밀었다.
“나에게 재능이 있는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 질문들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 자꾸만 제자리에 멈춰 서게 했다. 그때 문득 어릴 적 들었던 바보 온달 이야기가 떠올랐다.
칼을 들면 떨어뜨리고, 다시 들면 또 떨어뜨리던 사람. 누구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는 결국 '다시 잡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제야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잘하느냐'가 아니라, '다시 잡았느냐'로.
그리고 블로그를 5년만에 다시 시작했딘
그날 이후 기준은 단 하나였다. 엉망이어도 좋고 민망해도 좋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늘 다시 했는가.'
하루 한 줄, 하루 10분. 눈에 띄지 않는 이 무식한 반복은 나를 당장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 하나를 몰고 왔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재능은 여전히 부족했고 환경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안 될 사람’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매일 아침 나의 행동이 그 생각을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제 썼잖아.”
“그래도 오늘 다시 잡았잖아.”
반복은 자신감보다 먼저 오고, 확신보다 앞서 움직인다. 우리는 흔히 잘해야 계속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계속했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포기할 이유가 수만 가지 생겨도 다시 손을 뻗는 그 '작은 습관'이다.
칼을 떨어뜨려도 괜찮다. 문제는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다음 행동이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손으로 다시 칼을 집어 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어제 놓아버린 무언가가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잘 잡지 못해도 좋으니 다시 한 번만 손을 뻗어보자.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