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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Jul 12. 2024

이소룡의 클론?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영화단상 / 이소룡-들 (2024)



이소룡-들 (Enter the Clones of Bruce, 2024)


다큐멘터리 <이소룡-들> 소식을 들었을 때 내용이 궁금했다. 짜가 이소룡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해서다. 이소룡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했다면 오히려 덜 궁금했을 것 같다. 그 사람 세상 뜬 지가 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빼먹을 게 있단 말인가 싶어서. 이소룡과 똑같다는 짜가 이소룡 배우한테 많이도 데어봤고, 이소룡 영화 제목이나 확인도 안 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빌어다 억지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짜가 이소룡 영화에도 많이 데어봤다. 이소룡하고 옷깃 한 번은 스친 인연인지 몰라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데려다 다큐멘터리랍시고 찍은 것도 많이 봤고. 그 모든 건 이소룡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찾아볼 게 분명한 「이미자(이소룡에 미친 者)」들의 존재 때문이다. 그런 걸 찍은 사람들도 ‘이미자’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는 영어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소룡도 아니고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닌 이소룡 대행을 했던 클론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귀가 솔깃해진 것이었다.


이소룡이 뭔가를 굵고 짧게 보여주고 사라지는 바람에 그 틈을 타서 등장한 짜가 이소룡-들의 이야기라고? 예전 같으면 닮지도 않은 얼굴, 비슷하지도 않은 액션, 촌스럽기 짝이 없는 퍼포먼스를 이소룡과 똑같다는 내용일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그들의 소식도 궁금하고 그때 그 영화들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할지도 궁금했다. 욕을 입에 물긴 했지만 짜가 이소룡 영화를 제법 챙겨봤던 입장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하종도, 여소룡, 거룡, 양소룡 주연 영화의 광고





브루스 라이, 브루스 레, 브루스 레이, 브루스 량, 브루스 타이, 브론슨 리, 브루스 로......


<이소룡-들>에서 소개한 이소룡들의 이름이다. 영어 제목에 있는 ‘the clones of Bruce’인 것이다. 이름에 ‘브루스’가 들어있거나 성이 ‘리(Lee)’와 비슷하게 보이거나 발음되도록 가명을 붙인 배우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종도, 여소룡, 거룡, 양소룡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이 영화에 주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이소룡의 빈자리를 채워보려던 제작사들이 외모와 액션이 이소룡과 판박이라는 선전을 하며 이소룡과 연관 있음 직한 제목의 영화와 같이 이름을 들이밀었던 이소룡의 클론들이다.


이 배우들을 보면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소룡의 팬 치고 저 배우들이 이소룡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비슷하게 만든다고 만든 선전 포스터를 봐도 그다지 닮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얼마나 비슷한지 – 액션만큼이라도 - 를 확인하고 싶었고, 이소룡 주연작의 후속 편 혹은 이소룡의 전기일 것 같은 제목 때문에 낚이고야 말았다. 보고 나서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영화도 많다. ‘이미자’들에게 그런 영화들은 깜냥도 안되면서 나대는 정도로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보고 또 봤던 '이미자'들의 행보가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이소룡-들>에서 그 배우들이 이소룡의 클론 시절을 보내면서 겪었던 심정을 밝히는 걸 보면서 격세지감이란 걸 느꼈다. 그들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드리워진 시절이었던 만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배우들에 따라서 그 솔직함에 차이는 있어 보였지만 세월 지난 마당에 하고 싶은 얘기가 왜 없겠는가. 관객들이 원하는 이미지는 본인들이 아니었고 제작사는 이소룡 비슷하게만 굴라고 했을 테니까. 이소룡 팬으로서도 그들을 보며 차분하게 나름 객관적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오랜만에 접한 ‘이소룡’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때의 생각들이 밀려오는데, 그 뒤에 붙은 ‘-들’이라는 접미사는 새로운 고민을 부추겼다. <이소룡-들>에서는 이소룡의 클론으로 영화에 출연했던 ‘이소룡-들’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도 이소룡의 클론으로 살고자 했던 ‘이소룡-들’이 있었다. 이르자면 이소룡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그 시절을 보냈던 보통 사람들이다. 쿵푸 도장에 다니며 쌍절곤 돌리는 법을 배우고 절권도를 책으로 익히며 틈만 나면 이소룡의 모습을 방구석 거울에서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그들 역시 이소룡-들 아니었던가. 따지자면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방송인 이경규도 후자의 이소룡-들 중 한 사람으로 지낸 경험이 있었기에 이 영화를 수입하지 않았을까.



<이소룡-들>을 보면서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았든 싫었든 배우들은 출연했고 관객들은 감상했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했고, 관객들은 열심히 평가했다. 어찌 보면 치열한 밀당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소룡에 관심 없었던 관객들한테는 전혀 논외의 일이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누가 원해서 벌어진 일인지, 누구를 위해서 벌어진 일인지...


이소룡 당사자에게 클론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별 상관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터무니없는 흉내 내기에 불쾌했을 수도 있고 요즘 같으면 저작권 관련 문제도 거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사라져서 벌어진 일이다. 넘치고도 남을 만큼의 인기를 내버려 두고 사라진 책임은 져야 하지 않나.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자면 긍정적으로 작용한 면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끊임없이 이소룡과 그의 출연작들을 되새기게 해 준다는 면에서.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다큐멘터리 <이소룡-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소룡의 팬들에게 클론은 무엇이었을까?

이소룡은 배우로서 다가왔지만 일단 꽂힌 팬들에게는 그 이상이었다. 흠숭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부재를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생각에 우후죽순 등장하는 클론의 모습들까지 계속 지켜봤던 것이다. 결론만 생각하자면 그것으로 이소룡의 부재를 메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는 대안이 되어준 것은 맞다. 어쨌든 클론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들이 계속 궁금했던 건 사실이니까. 오히려 부정적인 면은 이소룡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평가하려는 이들에 의해서 드러났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을 구실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다. “무술영화나 배우나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언급에 대꾸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이소룡-들>의 중심에 위치한 진짜(?) 클론들에게 클론이란 무엇이었을까?

우선 이소룡의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데는 큰 자부심을 가졌던 걸로 보인다.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클론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수많은 관객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곧바로 성공 신화를 쓸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클론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없었다. 세계적인 스타의 이미지를 이어받는 배우로 선택되었다는 순간적인 기쁨이야 있었겠지만 스타의 자리를 물려받는 기쁨까지는 누리지 못했다. 속된 말로 흉내를 내면서 재롱부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대부분이었기에 진심 어린 팬이 따르기는 힘든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클론이 연기한 캐릭터나 클론의 출연작을 즐겨보는 관객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랐다. 심심풀이 땅콩이나 팝콘 무비라는 말에서 보듯 별다른 생각 없이 가볍게 웃고 즐기는 게 끝이었다. 실컷 보고 나서도 짝퉁이니 짜가니 하면서 시시덕거리는 관객들이 많았다. 나름의 서비스를 열심히 제공했던 그들에게는 언제나 ‘짝퉁’이나 ‘짜가’라는 딱지가 낙인처럼 새겨져 있았던 셈이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걸고 했으면 더 성공했을 거란 말도 들었다. (하종도, 브루스 라이)

촬영 중 다치는 일이 다반사라도 시키는 액션이라면 불사했다. (여소룡, 브루스 레)

영화 한 편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두 편으로 나눠서 상영하고 있었다. (거룡, 브루스 레이)


그들 중에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존심을 슬쩍슬쩍 꺼내 보이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때의 말 못 할 아픔을 세월 속에 담아서 다 흘려보내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소룡-들>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역시 당사자인 이소룡의 클론 배우들이었다.


이소룡이 떠난 자리가 비었다.

이소룡의 팬들은 대안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이소룡의 클론들은 선택될 수는 있었어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이소룡은 어쩔 수 없이 떠난 것이고, 그 팬이란 자리도 떠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소룡의 부재로 생긴 애매한 자리를 지키고자 애썼던 클론들이 제일 고달픈 자리를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이소룡이란 큰 별의 대안이라고 하니 그만두기는 아쉽고, 그 정도의 인기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텨낸 자리가 아닐까 싶다. 이소룡의 클론 배우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다. 그 시절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주는 역할을 한 배우들이었는데 단 한 번도 고맙게 생각하지 못했던 게 미안했다. 그때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다큐멘터리 <이소룡-들>이 고마울 뿐이다.




보태는 말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소룡의 클론이란 존재가 고맙다는 생각은 처음이다.

지금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도 해보지 못했을 것 아닌가.

이소룡에 미친 자가 그의 클론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다니

세상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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