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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구르르꺄륵 May 01. 2024

제왕절개 고통의 후불제

선불을 하지 않은 자, 후불로 고통받으리

제왕절개를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온 아내는 곧 몸에 칼을 댄 대가를 후불제로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간호사는 입원실을 나가기 전 남편인 나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패드 교체 작업이었다. 제왕절개를 마친 산모는 앞으로 4~5일 정도 아래로 피와 오로를 쏟아내게 된다. 오로는 자궁과 질에서 탈락해서 나온 온갖 부산물들을 말한다. 특히 2일까지는 그 양이 생각보다 많은데, 오로가 잘 안 나올 경우, 간호사가 산모의 배 위를 사정없이 눌러댄다. 아내는 입원실에 오기 전 벌써 간호사 분의 사정없는 배 마사지를 받고 와 기진맥진해 있었다. 수술 부위 위를 사정없이 누른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고통이다. 어떤 산모들은 누르는 간호사를 때리기도 한다는데, 아내는 때릴 힘도 없었나 보다.


약 이틀간 아내가 쏟아내는 피와 오로는 오롯이 보호자인 남편의 몫이다. 아내의 배에는 복대가 둘러져있었고, 그 아래에 길고 두꺼운 패드 두 장이 세로로 약간 겹치게 허리춤까지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식탁보 크기의 장패드가 있었다. 2~3시간 간격으로 패드를 교체했는데, 오로의 양은 생각보다 많고 끈적끈적했다. 끈적하지 않고 물 같이 피가 나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니, 피를 아주 잘 흘리고 있었던 것. 간혹 맘카페에 '우리 남편은 피를 못 보는데 너무 걱정돼요 ㅠㅠ' 라며, 벌써부터 남편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던데, 나는 비위도 강했고, 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 그냥저냥 내 일이려니~ 하며 때마다 패드를 갈아주었다. 어떤 산모분들은 남편이 패드를 갈아주는 순간이 제일 곤욕이었다고 말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아래는 다 뚫려있고, 피는 철철 흘리고, 소변줄까지 꽂고 있는, 평소의 인간다운 모습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가장 가까운 이가 치워주고, 닦아주고, 챙겨주는 상황이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다행히 나의 아내는 그런 자잘한? 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패드를 빠르게 못 갈면 힘들다며 화는 냈다. 그것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사랑하니까 참아준다 진짜.


새벽 내내 2시간 간격으로 간호사의 메디컬 체크가 이어졌다. 나는 아내가 누워있는 환자용 침대 아래에 몸을 다 뻗으면 발목이 밖으로 삐져나가는 간이용 침대에서 자다가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한 번씩 몸을 일으켜 앉았다. 간호사의 메디컬 체크가 끝날 때마다, 나도 패드를 계속 교체했고 이따금 목이 마르다는 아내에게 물컵에 빨대를 꽂아서 먹였다. 밤 10시 이후에는 은혜롭게도 물이 허락된 아내였다. 


그렇게 어찌저찌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서도 피로는 풀리지 않아 간이침대에 눕기만 하면 여지없이 쪽잠을 잤다. 나는 땀이 많은 체질이라 온몸이 끈적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 1인실을 제외하면 샤워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아내는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1인실을 앵무새처럼 외쳐댔고, 그런 정성에 감동한 것인지, 그저 운이 좋은 것인지, 이튿날에 우리는 드디어 1인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1인실로 옮긴 후 아내는 회복을 위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엉거주춤 걷기 시작했다. 감각도 어느 정도 돌아와 오로가 어느 정도 나왔는지를 느끼게 되었고,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하려고 했다. 나는 가끔 이런 아내가 조금 서운하게 느껴지는데, 사람이 말이야 어? 몸이 힘들면 적당히 다른 사람한테 의지도 하고 해야지 어?? 남이 해주는 건 성에 안 찬다면서 자기가 다 하려고 말이야 어??? 나는 인류애를 꽤 가지고 있는 편이라,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면 기분이 좋더라. 


그렇게 걸을 수 있게 된 아내와 함께 한 층 아래에 있는 신생아 실에서 뿌꾸와 뽀또를 만났다. 뿌꾸는 정말 꼼짝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있었고, 뽀또는 몸을 자주 비비적 댔다. 아직 눈을 뜨지 않은 두 아기를 보고 아내는 눈이 작은 거 아니냐며 벌써부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눈이 작은 얘기를 할 때마다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난 눈이 작은 편이다. 나도 아기들이 아내의 큰 눈을 닮길 바란다. 그래도 나에게 너무 꼽주진 말라고 말해도, 아내는 꼽준 건 아니란다. 꼽준 거 맞는 것 같은데!?

전에도 말했지만, 아기들은 놀랍도록 코가 오똑했다. 보통 신생아들은 몸이 팅팅 불어 나오고, 코는 엄마 배 어딘가에 눌려 나오니 찐빵 같은 느낌이 나는데, 뿌꾸와 뽀또는 체구도 조금 작아서인지, 이목구비가 자기주장이 확실한 편이었다. 확실히 잘생긴 편인 것 같다. (객관적인 의견임. 아무튼 객관적임) 지인들에게 사진을 돌려도 다 같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는 '어쩜 신생아 얼굴이 이렇게 이목구비가 뚜렷해? 코가 어쩜 이리 오똑해? 신생아가 아니라 유아 같은데?'였다. (인사치레 아니고 객관적인 의견임. 무조건 객관적임) 아기들의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서 안 하는 sns를 해야 하나 싶다. 그렇게 짧은 면회를 마치고 아기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고통을 잊고 있던 아내는 다시 얼굴을 구기며 입원실로 돌아갔다. 엉거주춤하며 걸어가는 아내를 보며, 약간의 경외심마저 들었다. 멋지다 우리 아내. 얼른 낫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돈가스 사줄게.




진짜 객관적으로 너무 귀엽고 잘생겼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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