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살아내기에 바쁘고 지쳐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질문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이력서의 자기소개를 적어 내려갈 때나 돼서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려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한다고 한참 이력서를 쓸 무렵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20대 중반의 나에게는 힘들었던 일이야 구구절절이 눈물 나는 사연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중 손꼽을 수 있을만한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시험 성적이 좋았을 때, 자격증 시험에 붙었을 때,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모두 행복했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이라고 손꼽을 만큼 임팩트 있지는 않았다. 그때의 이력서에 어떤 사연을 예쁘게 꾸며서 적어 내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걸 보면 그다지 행복했던 답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타이트한 옷에 높은 구두가 아닌 배가 펑퍼짐한 원피스에 낮은 샌들이 좋아진 나는 그때만큼 새로운 일에 열정이 있지도, 찬란하게 아릅답지도 않지만 세월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연륜을 얻는 중이다. 나무가 일 년을 살아 낼 때마다 훈장처럼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듯이 나도 점점 더 두껍고 단단해지고 있다. 이제 와서 누군가 나에게 삶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고민 없이 '아이를 처음 품에 안던 날'이라고 답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10년이 지난 지금 입덧을 하는 동안 얼마나 괴로웠었는지, 임신을 하면서 겪게 되는 호르몬에 변화에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배가 불러올수록 커져가는 통증에 잠들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기억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만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 이제 끝났나 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배 위로 올려진 따뜻하고도 커다란 살덩이. 양수에 불어서 눈, 코, 입 어느 곳 하나 예쁘지 않던 조그마한 아기가 그토록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도 내게도 있으려나 의심하던 모성애의 봉인이 아이를 안는 순간 터져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너무도 감격스럽고 벅차오르고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면서 이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나의 할머니는 오랜 기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처음엔 나와 내 동생을 헷갈려하시다가 끝내는 손주들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결국엔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셨다. 아이를 낳으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것들을 다 합쳐도 사랑하는 내 자식을 품에 안은 감동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한 사람의 인격체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내는 일, 어쩌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내 아이에 가 고맙다. 딸아, 사랑하는 우리 아가,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