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는 가을의 뒷자락이
고기를 다 구워 먹고 난 후의 불판처럼 쓸쓸하다.
그래도,
겉만 영근 씨앗이 언젠가 다시 피어나려는 열망을 안으로 다지는 때임을 알기에,
세상 끝의 시구에냐가 새로운 소망을 찾아 먼 비행을 준비하는 때임을 알기에,
아무리 지금의 짐이 무겁더라도
깨어보니 꿈일 필요도 없고, 과거를 회상해 본 영화의 주인공일 필요도 없다.
산과 들이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영광만을 바라보기까지,
누추한 외투에 거친 양피지의 책을 읽더라도 그 연단이 언젠가 소망을 이룰 줄 알기 때문이다.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지만 아파하는 것은 자신 때문이라 이 겨울의 입구에서 스페인 너머의 땅을 바라본다.
잠시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백팩과 다리를 내려놓고 긴 휘파람을 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