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의 정착을 바라며
커버 이미지: 조동균_선의 부재 20-1,2,3,4. 227.3x582cm. 2020
나의 그림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만 머물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삶이 더 자신과 밀접해있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을 주고 싶다.
-작업 노트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미국에서의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 도입을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현대미술이 다량으로 들어와 거래되고 있는 매우 큰 미술시장입니다.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이 도입되었을 때, 미국의 미술가들이 해외에서 받는 보상금에 비하여 미국이 유럽에 지급해야 할 보상금 규모가 크고, 이에 따라서 자국의 미술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미술품 유통업계의 우려로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 미술시장의 사례를 보면 한국에서도 미술시장이 더 크게 성장하기 전에 이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음악, 문학, 영상 등은 복제, 전송에 따른 저작권료나 보상금 체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음악 권리자는 자신의 음원에 대하여 저작권 사용료 나 보상금을 지급받고, 방송 출연자는 재방송료, 프로그램 복제 판매 시에 복제 배포 사용료를 지급받으며, 방송 작가들도 일정 요율의 재방송료를 받습니다.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은 위와 같이 타 분야 예술가들에게 부여된 창작자의 권리를 미술가에게도 부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미술 경매시장은 2000년대 이후 1,000배 이상 커졌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이미 알려진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가격이 많이 상승했습니다. 그렇지만 미술가의 유족에게는 그에 따른 어떤 이윤도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미술가는 작고 후, 미술시장에서 작품가격이 수백, 수천 배가 뛰어도 원작자인 미술가에게 어떤 보상도 없었습니다.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은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의 양극화 문제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극히 비대칭적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됩니다. 실제 국내 미술작품의 가치 상승은 일부 미술인에게만 해당하고, 그 결과 미술품 재판매가 이루어지는 경매에서 거래되는 미술가는 소수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2010년 유럽미술시장연맹(European Art Market Coalition)의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에서 징수된 미술품 재판매보상금의 74%는 미술인의 상속인, 20%는 집중관리단체에 돌아갔고, 6%만이 생존 미술가에게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2014년 정상철의 「재판매 청구권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 분석」에 따르면 미술품 최저 거래 한도 100만 원 아래에서 상위 50명이 재판매보상금의 65%를, 나머지 미술가들이 35%를 가지고 배분받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상위 50명의 미술가가 1인당 평균 5,000만 원, 나머지(1,742명) 미술가는 1인당 평균 74만 원 정도를 배분받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도에 따른 수혜자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견은 비단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에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제권, 공연권, 공중 전달권과 같은 저작권에도 우려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여 이를 불필요하게 여기거나 반대하는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저작권은 공평한 수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에 따른 공정한 수익을 약속하는 사회적 장치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이 미술인 소득 불균형을 강화하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필요해 보입니다.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이 적용되는 최저가격을 가능한 많은 미술가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범위에서 설정하고, 재판매보상금 중 미분배 보상금을 창작활동 지원 및 저소득 미술가들을 위한 복지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미술계의 발전을 위한 공익목적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미술품 재판매 청구권’의 실효성을 보장하려면 거래 정보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손쉽고 정확하게 정보를 관리하는 방법으로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실시간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이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서양화가 / 조동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