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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May 21. 2024

3. 인도 신화의 본산, <마하바라타>

고대 인도인들의 의무, 명예, 정의에 대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 신화를 기반으로 한 대서사시다. '마하바라타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도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인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총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의 분량은 인류 역사 속 서사시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방대하다. 무려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합친 것의 8배에 달한다. 현재 국내에서 완역본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완역본이 나오고는 있는데, 2012년부터 나오기 시작해 작년에 9권까지 나왔으며 20권 완간 예정이다.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어 요약본을 읽었다. 나들목 출판사에서 2008년 출간된 4권짜리 책이다. 마하바라타를 크리슈나 다르마라는 힌두 승려가 요약했고, 그것을 번역한 작품이다. 


요약본이기 때문인지 전개가 매우 빠르다. 간혹 지나치게 생략한 듯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지만 원전의 분량을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 원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생략이 예상되는 부분을 보면 <천일야화>와 비슷한 구도로 쓰인 듯하다. 어떠한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대를 설득하거나 해명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 신화, 경전 등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요약본은 이런 곁들이는 이야기들을 모두 쳐내고 메인 스토리 진행에 중점을 두었다. 읽기는 수월하지만 인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마하바라타의 진가를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판다바 5형제와 그들의 아내 드라우파디


마하바라타의 핵심, 쿠룩셰트라 전쟁


전체적인 이야기는 '판다바'라는 다섯 형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명의 어머니와 각기 다른 신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판다바들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놀랍게도 다섯 형제는 드라우파디라는 한 명의 여인과 결혼하여 아내를 공유한다. 드라우파디는 다섯 남편과 돌아가며 잠자리를 하고, 아내 역할을 한다. 물론 일처다부제 문화도 존재하지만, 인도 문화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그 반대가 보편적이다. 오히려 남편이 여럿인 여자라고 하면 천박하고 문란하다며 손가락질받는다. 다만 판다바들은 그들의 어머니 쿤티와 판다바들 사이의 신성한 맹세에 의해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결정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회적 윤리 규범과 문화를 거스르는 혼인 형태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보면 판다바들이 보통 인간들이 아닌, 신격화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판다바들이 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촌들인 '카우라바'들과 경쟁하고, 그 갈등이 거대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마하바라타의 주된 내용이다. 판다바들의 아버지이자 왕이었던 판두가 죽고 그 동생 드리타라스트라가 왕위를 이어받는데, 그에게는 ‘카우라바’라 불리는 100명의 아들들이 있다. 판다바들이 왕국의 적자임에도 카우라바들은 권력에 욕심을 품고, 드리타라스트라는 아들들의 욕망을 꺽지 못한다. 카우라바의 지도자이자 실질적 악역을 담당하는 두리요다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꾀를 내어 판다바들을 도박판에 끌어들인다. 결국 판다바들은 모든 것을 잃은 뒤 그 대가로 13년의 유배를 떠나고, 유배에서 돌아온 판다바들은 세력을 모아 카우라바들과 대규모 전쟁을 벌인다. 


'쿠룩셰트라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이 마하바라타의 핵심이 되는 사건이며, 이 전쟁에서 양측 대부분의 명장들이 죽어 나가고 결국 판다바가 승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들의 시련과 통쾌한 복수극은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과정에 수많은 전사, 현자, 왕, 신 등 다양한 존재들이 거대한 시간과 역사의 흐름 속에 얽혀 대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정의, 의무, 명예를 위한 끝없는 싸움


판다바와 카우라바들 만큼, 혹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는데 바로 '크리슈나'다. 전지전능한 신,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판다바들 편에 서서 온갖 술수와 계략, 간혹 비겁하게 느껴지는 방법까지 동원해 판다바들을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신의 개입은 ‘정의’로 정당화된다. 그 수단에 간혹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을지언정 본질적인 목적이 정의롭다면 어느 정도의 일탈은 참작이 되는 식이다. 


이는 과거 사회 규범과 법률 체계가 완전하지 않을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적·규범적·종교적 해석과 그에 따른 갈등이 만연했음을 엿볼 수 있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큰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크리슈나라는 절대자를 등장시켜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지켜내야 할 가치인지를 주변사람들과 독자에게 설교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대전쟁 시작 전, 판다바 셋째이자 크리슈나의 절친한 친구 아르주나가 전쟁 자체에 대해 회의감을 보이자 크리슈나가 그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크리슈나는 세상의 이치와 신의 의지, 계급(왕, 브라만, 크샤트리아 등)에 따른 의무 등을 내세우며 아르주나를 설득한다. 이 장면이 마하바라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나중에 찾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 부분을 따로 묶은 것이 <바가바드 기타>라는 책으로, 훗날 힌두교의 주요 경전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악역을 맡고 있는 카우라바들과 그 측근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현자에 가까운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면서도 각자가 속한 진영, 맡은 임무, 계급 등에 따라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과도 전쟁과 살육을 벌인다. 그러면서도 전쟁에 진심으로 임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기도 한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이들에게는 이런 의식적인 행동과 언어를 통해 명예를 치켜세우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듯 보인다. 그렇게 임해야만 사후세계에서 그 명예를 인정받아 화려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하바라타의 길고 긴 전쟁은 더욱 매력적이다. 상황과 묘사들이 매우 잔인한데도 불구하고 전사들의 명예와 긍지로 비장하면서도 감동적인 장면들이 연출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판다바들의 할아버지이자 뛰어난 전사이고 스승인 비슈마이다. 비슈마는 절대적인 힘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의무에 묶여 정의롭지 못한 카우라바 측에서 싸운다. 하나 그는 끝까지 명예롭게 싸우다 수많은 화살을 맞은 채로 쓰러지는데, 그 화살들 때문에 쓰러진 몸이 땅에 닿지 못하고 떠있는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비슈마는 그 상태로 수십일을 생존하면서 판다바와 카우라바 양측 모두에 많은 교훈을 전한다. 그는 종전 이후에도 생존해 계속해서 가르침을 전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판다바와 카우라바는 온갖 것이 비교 대상이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러한 현자들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였느냐이다. 판다바는 비슈마와 비두라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에게 한껏 자세를 낮추며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그들이 적진에 있음에도 끝까지 그들을 존경하고 따른다. 하지만 카우라바는 자기들의 편임에도 듣지 않고 무시한다. 그럼에도 카우라바를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의무를 다 하는 명장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자신의 가치관에 정반대 됨에도 의무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지금 보기에는 답답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리가 되어 후대에 남아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힘세고 현명하다 해도 쉽게 흠집이 날 수 있지만, 고귀한 영혼에는 흠집을 낼 수 없는 법이다. 


주요 내용 외에 흥미로웠던 점은 텍스트만으로도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표현들과 도저히 외울 수 없이 수많은 신들의 등장이다. 왕들은 매일 황금을 온 백성에게 뿌리고 다니고, 수천 명의 노예와 수천 마리의 코끼리,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를 주고받는다. 전장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만큼 무수한 화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며, 전설의 무기들을 한번 휘두르면 수백 수천 명씩 쓰러져 나간다. 인도 문화 특유의 화려함과 과장이 이때부터 이어져 온 듯하다. 


수많은 신들의 등장 역시 화려한데, 유일신을 믿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다신교인 힌두교의 신 이야기는 다소 복잡하고 난해하다. 신들의 지위가 뒤죽박죽이고, 어떨 때는 신의 지위가 인간보다 낮아 보이기도 한다. 위대한 브라만이 신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가 하면, 판다바들 같은 뛰어난 능력의 인간 앞에서는 오히려 신이 작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신들의 위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어떤 신 또는 인간을 주로 섬겼느냐에 따라 달라진 듯하며, 이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에서도 볼 수 있는 다신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나마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 같은 절대적인 존재들과 신들의 왕이라는 인드라(앞의 삼주신보다는 지위가 낮다.) 정도는 비중이 높고 지위도 확실한 편이다.  특히나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인간임에도 절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렇게 독특하고 흥미로우면서도 그리스 신화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도·힌두교 신화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마하바라타를 읽어볼 만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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