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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May 20. 2024

2. 선한 사람이 왜 고통받는가? <욥기>

인간은 신의 의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순응할 뿐

욥기는 구약성경에 포함된 이야기로, 기원전 2세기 경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욥이라는 인간의 삶과 시련을 담고 있다. 무교인 내가 성경을 읽게 될 줄이야 몰랐지만, 욥기는 일반적인 성경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욥기는 구약성경 중 ‘시가서’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시가서는 시와 노래를 뜻한다. 실제로 욥기는 경전이라기보다는 희곡을 읽는 듯 느껴진다. 해석에도 여지가 있다. 시각에 따라 신의 의지를 의심할 수도 있다. 욥기를 쓴 저자의 의도가 어땠느냐와는 관계없이, 이 내용이 성경에 있다는 것만으로 신의 의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선한 욥은 신과 악마의 내기에 희생됐다


욥은 부자이지만 신앙심이 투철하고 착하며 모범적인 사람이다. 사탄이 이를 시기했는지, 하나님에게 욥을 시험해 볼 것을 요청하고, 하나님은 이를 허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신의 의도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보잘것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다른 인간들에 비해 신실하고 선한 욥을 두고 사탄과 내기를 한다니. 그것도 첫 번째 시련에서 넘어가지 않자 한 번 더 반복하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욥은 재산을 잃고 가족이 몰살당하는 등 인생이 망가진다. 그런 욥 앞에 친구라는 녀석들이 찾아와 ‘네가 알지 못하더라도 죄가 있으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욥을 비난한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강림하여 세 친구를 꾸짖고 욥의 회개를 들은 뒤 그에게 빼앗았던 것을 배로 돌려준다. 하나 몰살당한 가족들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런 일을 겪은 욥은 과연 행복한 말년을 보냈을까? 이미 자기가 쓰기에 넘치고 남에게 한없이 베풀어도 남던 재산이 있었고,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 이를 한순간에 다 빼앗은 뒤 가족은 죽은 채로 재산만 배로 늘려줬다. 한데 그것이 신과 사탄의 내기에 의한 결과였다. 나라면 바로 신을 버렸을 것이다. 물론 신의 권능에 의하면 그런 욥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더 불행하게 죽음을 맞았을 테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신의 권능을 이해할 수 없다


욥기의 해석을 보면, 불행과 죄악에 대한 신의 개입이 어떤 의미인지를 탐구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불행이 찾아왔다고 해서 무작정 죄인 취급을 하는 욥의 친구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신은 자신의 권능을 설교하며 인간이 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린다. 죽, 불행이든 행운이든 모든 일은 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의 의미나 동기, 결론 등 신의 의지에 관한 것은 차원이 다르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마치 코즈믹 호러를 보는 듯한 설명이다. 그 와중에 신이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해 곁들인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의 등장이 흥미롭다. 이 둘은 훗날 대표적인 악마와 괴수로 수많은 문학, 예술은 물론 영화와 게임 등 현대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욥기는 성경의 성격으로 쓰였다고 생각되므로, 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야기라는 해석이 우선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착한 사람도 얼마든지 고통을 받고 있음을 너무도 빈번히 마주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가 무슨 죄가 있어 불치병을 앓으며 고통받을까? 실신한 신자에게도 불행은 얼마든지 닥쳐온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이런 생각은 기원전 2세기 경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답으로 쓰인 것이 욥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명쾌하지는 않다. 결국 불가지론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어떠한 뜻이 있을 것임을 믿고 계속해서 신앙심을 가져야 구원받을 것이란 메시지다. 


이 이야기의 논리성이나 설득력과는 별개로, 이러한 해석은 종교적으로 탁월한 효과를 보여 여태까지 숱한 종교들의 발전을 불러왔다. 애초에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은 의미가 없는 것이, 종교인들은 내세를 믿고, 현세에서의 믿음과 행동이 내세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 어떤 역경이 와도 신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이어 나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반면 무신론자들에게 내세는 없다. 현재의 행복과 만족도가 중요한데, 신이 나를 두고 사탄과 내기를 하여 살아 숨쉬기조차 고통스러운 역경을 주었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 신은 악신이 아닐까.

종교와 신앙이 보존해 온 이 위대한 기록물의 가치


이러한 종교적 문제를 떠나서, 문학작품으로서의 욥기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추정 시기가 맞다면 어언 4천 년 전의 작품이다. 4천 년 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것을 중요히 여기며 살았는지만 볼 수 있어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현대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인지 지금과 큰 이질감은 없다. 자연현상과 농업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 대부분을 신과 연결 지었다는 점이 익히 일고 있었음에도 흥미롭다. 그리고 그 오래전 사람들도 지금과 같은 철학적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했고, 그 답을 종교에서 찾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종에게 역시 4천 년의 세월은 그리 긴 것이 아니었다. 


욥기에 대한 내용들을 찾다가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허먼 멜빈의  <모비 딕>에서 주인공 이스마엘이 혼자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은 욥의 하인 중 혼자 살아남은 이가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의 오마주라고 한다. 또한 거대하고 난폭하여 괴수처럼 묘사되는 흰 고래 ‘모비 딕’은 욥기 ‘레비아탄’에서 따온 것으로 본다. 또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를 두고 신과 메피스토텔레스가 내기를 하는 장면이 욥기 초반의 오마주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밖에도 욥기는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작품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이 위대한 기록물을 수천 년에 걸쳐 보존해 온 종교와 신앙의 공헌에 대해서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를 통해 신, 믿음, 사랑, 용서, 고통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민과 연구를 이어 온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엿볼 수 있음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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