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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May 17. 2024

1. 인류 최초의 문학 <길가메시 서사시>

인류는 5천5백 년 전에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이다. 인류 최초의 글자인 쐐기문자로 기록된 것부터가 그 증거다. 기원전 약 3500전 년부터 점토판 기록이 있고, 수천 년에 이어 필사됐다. 물론 소실 및 파손된 부분들이 많아 텍스트의 양 자체는 적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설 부분이 고고학 논문을 읽는 수준으로 방대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한마디로 경이롭다. 지금으로부터 5천5백 년 전의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갈등 속에서 살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데,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영웅담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철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인류 보편의 문제, ‘삶과 죽음’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며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5천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여전히 인류는 명확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길가메시는 그야말로 안하무인 군주였다. 국가를 돌보는 일은 뒷전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으며 국민들을 괴롭혔다. 초야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영혼의 단짝이자 둘도 없는 형제가 되는 엔키두를 만난다. 그와 함께 모험하고, 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에 대한 회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인간을 찾아 나서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인간의 한계만 확인하고 만다. 그런 과정에서 길가메시는 유한한 삶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국가와 백성을 돌보는 데 매진하는 국왕으로 거듭난다. 


신화 속 '대홍수'는 인류 문명의 필연적 시련이다

내용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대홍수였다.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그리스도교 성경 속 대홍수의 원조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홍수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과 종교에 등장한다. 이것이 단순히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다른 종교나 문화권에서 모방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자연재해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고대 문명들은 대부분 강을 따라 발전했고, 특히 바다와 인접하여 평야가 발달한 하구 쪽에 문명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데 폭우나 태풍, 허리케인 등으로 인한 홍수 피해는 5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발생하며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바, 그 당시의 홍수는 그야말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재앙이었을 것이다. 매년 장마 때 일어나는 홍수도 위협적이었을 것인데, 특별히 수해가 크게 일어난 시기에는 정말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역병이나 화재 같은 재해도 크게 번질 수 있지만, 수해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재난이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은 적어도 한 번씩은 이런 재해를 겪었을 터이고, 저마다 그 사건을 신의 형벌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때마다 살아남아 문명을 재건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신격화될 수밖에.


길가메시 서사시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대홍수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더 있다. 이들의 신들은 전지전능한 듯 하지만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인간이 제사를 지내며 바친 공물을 먹고살았던 것. 이러한 설정은 농업사회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지도층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신들이 인간을 벌하겠다고 홍수를 일으켰더니 의도치 않게 몰살 수준이 되어버렸고, 공물을 바치지 않자 신들은 굶주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편법으로 살아남은 한 인간에게 영생을 주고 신격화해 문명을 재건토록 할 수밖에 없었다. 전지전능할 것 같은 신들의 이런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지막지한 권능을 행사하며 영향을 미치는 신들도, 결국에는 실수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미숙한 인격체이며, 인간 없이는 살 수도 없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어쩌면 당시 국가의 지도층들이 자신들을 신격화하여 모든 일들을 벌이고 역사를 써 내려갔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인류 최초 브로맨스의 주인공,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어쨌든 그러함에도 한낱 인간들은 이런 신들에게 운명을 맡긴 채 살아간다. 그 위대한 길가메시 왕과 엔키두조차.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그리고 너무도 짧고 유한하며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증명하기 위해 길가메시는 애를 쓴다. 다른 국가를 정복하고, 삼나무 숲의 괴물 후와와를 처치하고, 세상의 끝으로 향해 영생을 얻고자 한다. 


그런 여정에서 그의 영혼의 단짝 엔키두는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운 존재다. 헌칠한 체격과 무력을 가진 둘은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결투 상대로 처음 만나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인정하여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가 된다. 이후로 둘은 모든 전쟁과 역경을 함께하며 더욱 돈독해지며, 그렇기에 엔키두의 갑작스럽고 무력한 죽음 앞에 길가메시는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 이러한 시련이 안하무인이었던 길가메시를 성군으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대홍수 이후 도덕도 체계도 없이 제멋대로였던 왕과 인간 세상은 신들이 바라던 대로 길가메시가 체계를 바로 잡으며 다시 문명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길가메시가 자신을 더욱 열렬히 증명하려 했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도운 것이 엔키두였다. 엔키두가 없었다면 길가메시는 그저 한량 같은 왕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엔키두의 존재로 길가메시는 더 큰 일들을 도모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엔키두가 신의 화를 샀으며, 쌓아 올린 것이 많았던 만큼 엔키두의 죽음으로 인한 시련이 더욱더 깊었을 것이다. 그렇게 엔키두라는 존재는 길가메시를 더 특별한 존재로, 그리고 더 나은 존재로 인도한다. 이런 특별한 관계성 때문인지 정작 길가메시보다 엔키두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둘의 브로맨스는 인류 최초의 문학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는데, 특히 서로 번갈아가며 두려워하고 의심에 빠질 때 다른 한 편이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아주 모범적인 동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판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문학이면서
여전히 살아있는 문학이다


해설을 읽으며 알게 된 길가메시 서사시가 특별한 점은, 아직도 이야기가 계속 발굴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유실된 점토판들이 매우 많아 누락된 내용이 상당한데, 유적이 발굴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그에 따라 해석도 달라진다. 이야말로 5천 년이 지난 지금도 특별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이후 아카드어와 수메르어가 사장되는 수준에 이르러서도 이 설형문자를 사용한 필사본들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종교적 이유로 라틴어를 배우고 유지해 나가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들 덕분에 많은 기록이 남아서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대부분의 이야기를 파악하고 의미와 가치를 산정할 수 있을 만한 5천 년 전의 작품이 읽히게 된 것이니 감탄스러울 뿐이다.


‘모든 창작은 모방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모방의 시초이자 근본이 된 길가메시 서사시를 접하며, 단지 문학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 사회, 문명 전체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위대한 이야기와 소중한 기록, 장대한 역사가 만들어낸 인류의 기적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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