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상을 봤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않아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연주는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곧이어 정적이 흘렀고, 그는 무용을 하듯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곡은 이미 시작되었어요."
고요에서 흐르는 공기와 음악을 끌어다 건반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섬세한 첫음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감동을 받았는데
그 감동은 단순히 그의 훌륭한 연주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가졌던 몇 초의 정적이,
멈춰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텅 빈 공백도 음악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첫 건반음은 마치 모든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것처럼 다정히 들렸다. 이런 사람이 예술을 하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