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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Jun 13. 2024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면서 살면 된다

22/06/07

요즘 우리 집 가장 큰 화두는 '차박'이다. 엄마 아빠가 유튜브에서 차박영상을 보기 시작하더니, 우리 에도 차박 매트를 깔겠다고, 차박을 위해 정비를 할 거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매트를 차에 설치하다가 두 분 모두 손에 큰 상처까지 생기셨다. 그렇게 몸을 희생해 가며 고대하던 차박인데, 여행 일정 중 일요일부터 비 소식이 있었다.  


비가 와서 어째? 하고 내가 안타까운 듯이 말을 하니 엄마랑 아빠가 합창으로 그랬다. "비가 오면 더 좋지."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그렇네. 수긍했다.     


귀가일 아침 9시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집에 언제 와?      

아침에 아빠랑 동네 산책 겸 걷다 왔는데 아빠는 피곤해서 또 한숨 자고 있고, 아빠 깨면 그때 갈 거야.

좋았어?     

너무 잘 잤어. 빗소리가. 차에서 듣는 빗소리가 너무 좋아.     


 말을 하면서, 비 오는 날에 차박을 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하는 거다. 꼭 비 오는 날 차박을 해봐야 한다면서.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좋아할 거야. 분명 좋아할 거야. 애써 겪지 않아도 비 오는 날차박을 좋아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비를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장면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0살쯤이었나, 가족끼리 여행을 갔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쓰던 우산을 접고 비를 온몸으로 맞고 돌아다녔던 기억.


비가 그렇게 세차게 내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비를 피해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우산을 쓰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옷이 젖어버렸다. 이렇게 된 거, 내리는 비를 그냥 맞자고 엄마가 말했다. 우산을 쓰지 않는 선택지도 있구나.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세찬 비를 온몸으로 아프게 맞았다. 장대비가 얼마나 거센지 살에 닿는 느낌이 꼭 우박 같았다. 온 가족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 길을 길었다.  옷이 더러워질까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물장구를 치면서. 감기에 걸릴까 걱정하지 않고 우리 모습 좀 보라고 웃으면서.      


돌아가는 길, 그 십몇 분의 시간 동안 우리 줄기가 되어 위에서 아래로 나게 내렸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을 행복이라고 편집하여 오늘날의 기억에 새길만큼.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는 것. 내 인생에서의 상징적인 행복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게 아닌가?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빗줄기가 되어 세차게 내리는 것.     


그게 내 행복이라면 나는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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