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게 쓰는 편지
지금 나의 베스트프렌드 나의 붕붕이
안녕, 나는 널 타고 다니는 사람이란다.
내가 맨날 음악도 시끄럽게 틀고,
가끔 짜증 나면 소리도 꽥꽥 질러서 싫었지.
널 처음 운전했을 때 진짜 네가 너무 무서웠는데.
운전 집중하는데 방해될까 봐 조수석에 사람이라도 타면
입 다물게 해서 적막 속에 운전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적막은커녕 요란해졌구나.
근데 네 엔진소리도 요란하니까 쌤쌤하자.
첨엔 난 네가 참 못 미더웠다. 주차도 힘들고 후방카메라도 고장 나고 그랬잖아. 네가 나대다가 막 꽃이고 건물이고 다 치고 다닐까 봐 무서웠어. 그에 반해 회사차는 전기차라 슝슝 잘 나가고 인터페이스랑 기능이 잘 되어있어서 가끔 회사차랑 너랑 비교한 나날들도 있었어. 서운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간지는 회사차보다 네가 더 한수 위라는 걸 잊지 마. 너의 요란한 엔진 방귀가 진정한 자동차, 부릉부릉 하는 게 운전하는 맛 아니겠니?
너 그거 기억나니. 새벽에 갑자기 미친 듯이 삐융삐융 울던 네가 생각 나. 울고 있는 너에게 닥쳐. 닥치라고 제발.. 하면서 당황했었는데 너 그때 왜 그랬니. 자는 사람들 다 깨우고 그랬잖아. 뭐가 얼마나 슬펐길래 그렇게 동네방네 떠벌리면서 울었어. 못 알아줘서 미안해. 근데 종합검사 때 너 별 말 없었잖아. 아프면 그때 티 내주면 좋잖아. 그래도 또 삐융삐융 난리 쳐도 괜찮아. 그때도 같이 버티자.
내가 태풍 오는 날에 나무 밑에 널 주차해 놨던 게 생각난다. 그날 밤에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 줄 아니. 강한 바람에 나무가 쓰러져서 너를 뭉갤까 봐 별 상상을 다 했어. 네가 힘들어지면 나도 힘들어지는데.. 그날밤에 태풍이 지나가고 나는 네가 뭉개졌나 아니면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러 갔었지. 그런데 너는 와이퍼에 나뭇가지 하나를 끼워놓고 낭만을 즐기고 있었지. 어쩌면 넌 다음 생에 나무로 태어나야 할 운명 인가 싶다.
네가 수리 갔다 온 날이면 나는 항상 마음이 짠 했다. 어린것이 뭔 아픈 데가 그리 많은지 아프다고 계기판에 경고등 키고, 그때마다 무서웠지만 넌 또 금방 고쳐지기를 잘했지. 자잘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넌 항상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했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수리 갔다 온 날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네 사이드미러에 손을 얹고, 고생했다... 고생했다... 말했지.
쓰다 보니 난 널 정말 아꼈던 것 같구나. 말하고 보니 그렇구나. 염병 떠는 나를 견디고, 얄궂은 날씨를 견디고 자잘한 상처를 견디는 네가 너무 안쓰럽고 사랑스럽구나. 자랑스럽구나. 잘 쉬고 있기를 바라고, 좋은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 출근할 때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