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믕딤 May 11. 2024

사람이 징그럽게 느껴질 때


심리상담 앱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람이 징그러울만큼 혐오감이 들어서, 그 기분을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차오르는 혐오 뿐인 불만과 감정쓰레기는 비용을 지불하고 심리상담을 하며 털어놓는 게 합리적이고 속이 편하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징그럽다는 말을 친구나 가족에게 했다가는 괜한 오해와 걱정만 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앱에서 바로 상담 가능한 심리상담사가 없었다. 순간 또 짜증이 솟구쳤다. 이 기분을 내일까지 버티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진정은 되겠지만, 나는 지금 멱살을 잡고 싶었다. 가장 아프게 때려서 K.O시키고 싶었다. 안 그러면 이 밤이 정말 길 것 같았다. 주변에 모기가 왱왱 거리는데 그걸 안 잡고 어떻게 잠에 들 수가 있나. 나는 계속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들었고, 그런 혐오감이 드는 나도 혐오스러웠다. 엿 같아서 인터넷 검색창에 인간이 얼마나 징그러운지에 대해 검색했다. 그와중에 브런치 글이 상단에 뜨는 것을 보고.


아, 또 브런치야.


하고 짜증이 났다. 오늘밤의 나는 브런치도 짜증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좀 익숙해졌다고, 브런치도 싫었다. 여기 써지는 글들도 싫어. 브런치 특유의 절절한 감성글들도 싫고, 본인의 삶과 본인의 볼행에 한껏 취한 것 같은 사람들도 싫고, 맞다. 대표적인 게 나다. 그래서 내 글도 싫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 글을 클릭해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글을 쓰는 사람이 징그럽다는 글이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갔다. 나도 계속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과 만족스러움은 덤. 나는 내 안의 혐오감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한 대 때려줄 문장이 필요했나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치. 글은 정말 징그러워. 글 쓰는 사람도 징그럽고. 글 쓰는 사람들 특유의 지적 허영,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어떤 관심을 받기 위해 한껏 치장한 단어와 문장 그 모든 것들이 싫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나에게서 이런 부분들이 계속 짜증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글 안에서만큼은 솔직하고 싶은데, 글에서조차 솔직해지는 게 또 눈치가 보였다. 이것도 내 유구한 사회부적응의 한 형태겠지. 그래서 글도 이런 글을 쓰는 거겠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모든 것들이 가끔은 미친듯이 지겹고 힘들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나는 내 개인 메모장에다가 계속 혐오라는 말로 빙자한 쓰레기들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다. 진짜 한심하고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야. 하면서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네 스스로 결핍을 인지했으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걸 채우려는 노력이나 할 것이지. 언제까지 도망치면서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해석할건데?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들, 어쩌면 내일이면 지우게 될 쓰레기들이었다.


사실 그 욕에 대한 대상은 있었다. 최근 인연이 끝났던, 그에게 하는 욕이었다. 확실했다. 그런데 왜 누구한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냐면, 내 욕은 다 나에게 치명타인 것들로만 엄선한 내 자기혐오 컬렉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욕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나를 투영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하는 욕지거리는 모두 FROM ME, TO ME 라는 걸 나는 너무 알아. 그런데 나만 탓하기에는 너무 벅차.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몇몇 대상에게 뒤집어씌우고 신나게 패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져버리니, 내가 느끼는 나에 대한 이 분노가 정말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싸늘해져서 더 미치겠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내 감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집은 또 다시 엉망이다. 기분은 축축하고, 낮에 잠을 이미 잘 수 있을때까지 자버렸다. 꿈으로 도망도 못친다.


불길처럼 쓰던 타이핑도 멈추고 빗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비가 오면,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나의 흔적들을 비가 씻겨내려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밤이 되면, 가난한 마음이 어둠속에 잠자코 있다가 아침이 되면 빛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떠오른다.


울컥울컥 넘어오는 것들을 꾹꾹 삼킨다. 그래, 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다. 적어도 내 집엔 나 밖에 없으니. 되는대로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음을 누리자. 마법같지는 않아도 이내 곧 결론을 찾는다. 아니, 결론은 아니지. 아마 결론이 나려면 기나긴 오늘 밤이 다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답지 않은 일만 하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