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행에 관한 다양한 글을 읽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표현할 때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다. 불행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데, 각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불행함을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알고 싶었다. 사실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마구 들려오는 게 불행에 관련한 표현이긴 하다. 길 가다가 들리는 노래의 가삿말에도 불행하다 못해 절절절 울부짖는 음성이 들리고, 간만의 통화하는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새로운 불행스토리를 듣는다. 누구와의 갈등, 상실에 대한 슬픔, 미래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불행이 존재한다. 불행은 그렇게 사방팔방에 아무렇지 않게 널려있다. 다만 내가 이 사실을 굳이 왜 의식하냐면, 어떤 드라마의 대사 때문이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2화 중에서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이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는 '~척하다'라는 표현에는 주로 잘난 것들이 붙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잘난 척' '멋진 척' '아는 척'처럼 그냥 들어도 익숙한 조합. 이런 어구들에는 항상 뻔뻔한 표정의 어떤 사람이 으스대는 말을 하면서 우쭐하고 있는, 혹은 누군가를 무시하고 있는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불행한 척이라니. 표현이 너무 생소하지 않은가. 사람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비꼬거나 모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거나, 우울이나 불행 같은 건 심각하게 다뤄주자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불행한 척이라는 단어가 꽤나 담담하고 담백하게 등장하는 걸 보고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이 너무 거대하고 크다고 느끼는 바람에, '불행한 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불행을 손에 쥔 채 놓아주지 않고, 불행하다는 자극적인 표현 방식에 중독되어 타인 앞에서도 기꺼이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는 것이다.
일단 나부터가 '불행한 나'에 중독된 사람이다. 나는 내 불행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탓에,내 경험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언제나 내 불행을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너무나 불행해서 곧 죽을 것처럼 그렇게 쓴 글이 많다. 불행한 나, 우울한 나, 남들과는 다른 나 자신에 잔뜩 취해서 나는 왜 이렇게 비정상이지 나는 왜 이렇게 다르지 내 삶은 왜 이렇지 하면서 눈물을 훔친 날들도 참 많다. 내 불행이 곧 나 자신이 되어 나를 정의하고, 내 스스로 정의한 불행으로 내가 나를 소개하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했다. 불과 며칠 안 된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에 몇몇 창작물들을 듣게 되고 읽게 되면서 느낀 바가 있다. 아, 이렇게 떠벌거리지 않고도 불행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극단적인 단어 선택과 극적인 상황 연출로 구구절절 꺼이꺼이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않고, 난 남들과 달라 하며 시니컬해지지 않고, 그냥 "아까 먹은 된장찌개 국물이 고춧가루 때문에 얼큰했다."처럼 그냥 담담하게 사실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방식으로, 솔직하게, 가감 없이. 만약 그 문장에 불행한 척을 곁들이면 "다른 사람들은 잘만 먹던데, 나는 고춧가루가 가득한 된장찌개에 담긴 나의 트라우마 때문에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그 트라우마가 뭐냐면.." (그 후 신나게 불행스토리를 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만 그럴 수 있지만, 나는 솔직히 불행에 한껏 취해있는 내 표현 방식을 발견하게 되면 이제 낯 뜨겁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말과 쓰고자 하는 글을 얼마든지 편집할 수 있다. 굳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그대로를 모두 날 것으로 담을 필요는 없다. 지금 그냥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이 한 글에 다 담는다면, 글은 흘러넘치고 흘러넘쳐서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사실 나만 보는 글, 바닥이 엉망이 되든 어떻든 크게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내가 내 글의 독자라고 생각하고, 독자인 나의 기호를 타겟으로 글을 쓴다면 말이 좀 다르다. 내가 읽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글은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고, 과장되고 극단적인 단어 사용을 줄이고, 쉽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 다양한 어휘, 다양한 문장을 배우고 싶었다. 내가 내 불행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싫은 걸 싫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현방식의 한계 때문인 것 같았다. 많은 창작자들이 불행을 어떤 방식으로 털어놓는지 보면서 느꼈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이성적이게 경험을 털어놓고 고민을 이어나가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수 있구나. 실제로 필자의 감정이 어떻게 요동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글 안에서는 편안하고 잔잔하게 와닿는구나. 그렇게 독자를 배려하는구나 싶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이어나가면서도, 후에 읽는 이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게 담긴 글. 나도 그런 글이 쓰고 싶었다. 내 글은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아직도 나 좀 봐달라고 펄쩍펄쩍 날뛰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말이다. 계속 읽고 쓰다 보면 나도 조금 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