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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Jun 16. 2024

어딜가나 별종들이 있잖아요


반딧불이 축제에 다녀왔다


시간 동안 어두컴컴한 숲을 걷는 코스였는데, 숲 곳곳에 하얀 알전구처럼 콕콕 박힌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일러스트와 보정된 사진 속에서 표현되던 그런 동화적인(팅커벨 같은) 불빛은 아니었지만, 몸에서 빛을 뿜는 생물이 지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 같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빛공해가 전혀 없는 숲 속이라 눈앞이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많았지만, 반딧불이 무리의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숲 속 나무줄기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반딧불이들은 대체로 숲동굴 속에 모여있는 듯했는데, 가끔가다 한 두 마리가 강한 빛을 뿜으며 독고다이로 혼자 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께 숲 속을 걷고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어느 무리에서나 5에서 10프로는 외톨이래요."


친구는 대답했다.


"꼭 번식만을 위해 빛을 내는 걸까요? 그냥 빛을 내고 싶어서 빛을 낼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어딜 가나 별종들이 있잖아요.

그 말을 하면서 이상하게 조금 위로가 되었다.




해설사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반딧불이들이 빛을 내는 이유는 번식을 목적으로 둔다고 했다. 수컷 반딧불이가 빛을 번쩍거리며 돌아다니며 매력을 발산하고, 암컷 반딧불이는 빛을 내며 나무 같은데 붙어있다가 맘에 안 드는 수컷 반딧불이가 다가오면 빛을 탁 꺼버린다고 한다.


뭐야. 너무해. 친구와 나는 킬킬거리며 해설사님이 덧붙여주시는 반딧불이에 대한 정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반딧불이는 사람의 체온이 스치기만 해도 화상을 입어 죽는다는데 너무 연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보니 반딧불이랑 모기랑 공생이 안 된다던데 그래서 이 숲에 모기가 없는 것 같아요, 바퀴벌레랑 개미 사이 같은 걸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거닐었다. 그러다 숲 속에 반딧불이 말고 빛을 하나 더 발견다.


.


달빛이 너무도 밝았다. 반달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달처럼 꽉 찬 빛을 고 있었다. 어찌나 밝은지 달 주위로 달무리가 형성되어 달이 꼭 하얀 구름에 두둥실 실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숲 길을 걸으면서 반딧불이도 반딧불이지만 달빛이 너무 밝고 예뻐서 우리는 계속 와. 달빛이.. 하며 그 아름다움을 언급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게 우리 앞뒤로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꼬마들과 부모님 일행들이 있었는데, 한 꼬마가 그런 말을 했다.


"옆을 보나, 위를 보나 빛이 너무 밝고 예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말을 내뱉는 앳된 목소리와 감성이 너무 예뻐서 살짝 뭉클할 뻔도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들에게 이 감상들이 얼마나 큰 추억이 될까?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과 손을 잡고 반딧불이를 보러 올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자연스럽게 또,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달빛과 반딧불이빛에 의존하며 깜깜한 숲길을 한참 걸었더니, 저 멀리 정말 강렬한 빛 하나 온 거리를 비추고 있는 게 보였다. 반딧불이 축제를 관할하는 건물의 빛이었다. 한 시간 동안의 숲 트레킹 코스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저 건물을 보니까 이승에 도착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저승에 갔다 온 기분이에요.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정말 딱 맞는 표현이라고 웃었다.


자연에서 본 빛은 너무도 희미하고 연약해서,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영혼 같았는데 그래서 계속 꿈속에서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인간이 만든 건물이 뿜는 강렬한 빛을 보니 마치 기나긴 여름밤 꿈 속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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