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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쌤 Jun 24. 2024

중도·중복장애학급 담임 생존기(2)

중도·중복학급의 고충

  중도·중복학급 담임으로는 4개월 차로, 6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 반을 맡아오며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많았다. 지원하기 전부터 중도·중복반이 힘들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유난히 진이 빠지던 어느 날,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7년도 대학생이었던 나는 우리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하계 1급 정교사 연수에서 시각장애 선생님의 강의 대필과 대독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수업 중 각 시도별 선생님들의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나 고충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직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야기는 A광역시에서 일반학교 중도·중복학급에 근무 중이셨던 20대 여자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당시 A광역시는 전국 최초로 중도·중복학급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언제 응급실에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최중도(最重度) 장애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있음에서 오는 엄청난 부담감과 학부모의 민원, 그리고 교육과 보육(간병)의 모호한 경계에 환멸을 느낀다며 꺼이꺼이 서럽게 울면서 발표를 하셨다. 그래서 그 자리는 매해 선생님들이 6개월을 못 버티고 병가를 써서 매년 기간제교사로 채워지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를 흔히 ‘신규의 무덤’이라고 한다. 그 여자 선생님의 무시무시한 얘기를 듣고 꿈 많던 임고생이었던 난 침을 꿀꺽 삼켰다. 현직은 이런 건가? 내 이상과는 다르구나 싶었다. 이렇게 이때의 일은 기억 저편에 넣어두고, 짧고도 길었던 몇 해의 수험생활 끝에 교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지금 내가 그 A광역시의 중도·중복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다. 유독 힘들었던 날, 잊고 있었던 기억인 1정 연수(교사 연수)에서 울면서 발표를 하던 그 여자 선생님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내 대뇌피질 깊숙한 곳에 저장된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그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하나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릎을 탁 쳤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세상에나. (알면서 자원했다니!)


  중도·중복반이 일반 특수학급과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첫째로, 교실 내에서 아이들의 건강관리까지 교사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교사는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건강까지 신경 쓰는 것은 조심스러운 문제 이긴 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거의 매 시간 경기(驚氣)를 하고, 청색증이 오거나 호흡곤란으로 인해 구급차를 부르는 일이 자주 일어나므로 교사가 학생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처음에는 교육과 간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나는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인데, 왜 매시간 아이들의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고 혈압을 재는지 의아했다. 학기 초에는 이게 과연 교사의 일이 맞나 싶었다. 오늘도 한 학생이 전신 발작을 하여 눈이 뒤집히고 호흡 곤란이 왔다.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경기가 지속되는 20~30초 동안 심장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었다. 교사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든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순간만큼은 교사가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로서 원활한 교육활동을 돕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몸소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고충으로는 모든 학생들의 신변처리까지 교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 고등학생들이어서 거의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다 큰 학생들의 벗은 몸을 보고 소변과 대변을 닦아주는 것이 비위도 상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학생들의 변 냄새가 계속 코에 머물러 있어서 학기 초에는 점심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밥과 국, 반찬들을 다 곱게 갈아서 먹여야 하는 것 또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3월 달에는 죽처럼 갈린 음식물을 보는 것도 어려웠고, 식사 후 양치를 시킬 때도 비위가 상했었다. 아무래도 비위를 늘리는 것은 중도·중복학급 담당 교사의 숙명인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똥기저귀를 갈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밥도 맛있게 먹는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점은 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네 명 모두 발화(發話)가 되지 않는다. 즉, 넷 다 말을 하지 못한다. 다만 그중 두 명은 “으”나 “에”같은 음성 정도로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중도·중복반에서는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40분의 수업시간 내내 교사인 나 혼자 말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수업 중 학생들의 피드백이 오지를 않으니 매시간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쭉 지적이나 자폐 아이들만 만나 오면서 수업 중 농담 따먹기도 하고 1타 강사가 된 양 열정적으로 판서도 하며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이 뇌병변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활용해서 수업을 해야 했다. 그럴수록 점점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전공 공부를 통해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아예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쌩 신규교사가 된 것 같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3월 개학 첫 주에 바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중도·중복장애학생 교육의 이해’와 ‘중도장애 및 최중도중복장애 학생 교육과정’ 등 관련 전공 각론서를 주문했다. 매일 공부와 수업을 병행하며 한 주 한 주 지나고 나니 이제는 아이들의 눈빛과 호흡, 몸짓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도 내 아이들에 비해 나의 역량이 한참 모자람을 느낀다. 호기롭게 학기를 시작했던 3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학기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지만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날들이 애석하게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름밤 선득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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