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의 이틀차 이야기
보통 ‘몽골’ 하면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잔치와 은하수를 떠올린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몽골의 장마 아닌 장마. 분명 몽골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건조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나 우리 여행 기간 동안 절반 이상은 비가 내렸다. 특히나 첫날에는 엄청난 폭우가 내려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가이드님이 말하기를 지금까지 사막이었던 곳이 초원이 되었을 정도로 이번 여름에는 몽골에 비가 많이 내렸다고 했다. 우리는 별을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비만 맞다가 여행을 날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하늘님(?) 제발요!
둘째 날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다. 캠프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을 했는데 다행히도 포장도로가 많아서 편하게 자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바가가즈린출루로 가는 길에 몽골의 돌탑인 ‘어워’를 봤다. 가이드쌤이 하는 말이, 어워 주위를 돌면서 돌을 세 개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돌을 한 개씩 던지면 된다. 몽골의 돌탑은 얼마나 영엄할 지. 과연 내가 빈 소원들이 이루어질까 궁금해졌다. 이러한 어워는 관광지 옆이나 도로 주변 등 사람이 다니는 장소라면 크든 작든 곳곳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운전하다가도 어워를 보면 차에서 내린 뒤 돌을 던지고 주위를 돌거나, 여의치 않으면 차 깜빡이라도 누르고 간다고 한다. 어워 옆에 있는 독수리와 낙타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독수리가 크고 무거워서 놀랐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몽골의 전통 음식인 ‘보츠’였다. 보츠는 양고기로 만든 만두인데 베어물 때 육즙이 가득해서 상당히 맛있었다. 새로운 숙소로 이동해서는 짐을 풀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문을 열어놔도 바람이 잘 통하지 않던 게르는 더웠다. 아무리 몽골이어도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가이드쌤이 몽골의 전통놀이인 ‘샤가이’에 대해 알려주었다. 샤가이는 양의 발목뼈로 만든 몽골의 공기놀이 같은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고 놀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윷놀이와 비슷했다. 알까기도 할 수 있었다. 이 샤가이의 네 개의 면은 몽골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축인 낙타, 염소, 양, 말을 상징한다. 볼록하거나 옴폭한 면을 보고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서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자세히 보니 실제 동물 생김새와 비슷했다. 이곳을 들른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만지고 놀았는지 표면이 닳아서 맨질맨질했다.
꿀 같던 휴식시간 이후, 우리는 차를 나눠 타고 비포장 도로를 30분 정도 달려 바가가즈린출루로 향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도로가 험해서 그런지 차량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우리나라였다면 바로 보험을 불러서 금방 해결될 일이었겠지만, 워낙 땅덩이가 넓은 몽골에서는 기사님들이 직접 장비를 사용해서 타이어를 갈았다. 어렸을 때 이후로 타이어를 가는 것을 본 게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바가가즈린출루에 도착하자 광활한 초원과 암석이 어우러진 장관이 펼쳐졌다. 눈이 시릴 정도로 온통 초록의 초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끝없이 나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니 이제야 몽골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초록과 갈색과 파랑뿐이었다. 숨이 막히는 풍경에 한참을 감탄하다 바위절벽에 걸터앉아서 아찔한 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공용 샤워실 온수가 끊기기 전 재빠르게 씻고 숙소 너머로 지는 노을을 봤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초저녁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다. 역시나 구름이 많아서 관측은 힘들 것 같은 하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옆동네에 천둥 번개가 번쩍번쩍하기 시작했다. 두툼한 먹구름에서 땅으로 비가 쏟아지는 것이 맨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구름은 점차 우리에게로 몰려왔다. 공기가 깨끗하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비 오는 것이 보인다니 신기했다. 먹구름이 언제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갈지 가늠해보려 했으나 구름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이내 쏟아지는 폭우에 관측은 포기하고 천문 다큐멘터리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감상하며 다 같이 아쉬움을 달랬다. 역시 별쟁이들은 쉴 때도 별이다. 중간중간 나가서 하늘을 확인해 봤지만 애석하게도 먹구름은 쉽게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다 같이 모여서 야식을 먹으며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와 영화 ‘더 문‘을 연달아 봤다. 자정까지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열리지 않는 하늘에 결국 각자 방으로 해산 후 취침시간을 가졌다.
선잠을 자다가 새벽에 순간적으로 잠이 확 깨서 일어났다. 룸메이트 선생님은 이미 꿈나라 여행 중이셨다. 룸메의 단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겉옷을 걸치고 게르 밖으로 나가봤다. 세상에나! 구름 틈새로 빼곡한 은하수 일부분이 보였다. 당장 룸메 선생님을 깨우고, 옆방 선생님 두 분을 불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서 망원경과 카메라를 꺼내고 은하수를 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구름이 금방 몰려오는 바람에 오랜 관측은 하지 못했다. 비록 한 시간 남짓, 구름 사이로 잠깐 하늘을 엿본 정도였지만 잠들지 못한 우리 원정대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위의 사진은 약 한 시간 정도 관측을 한 결과물이다. 그렇게 몽골 밤하늘을 맛보기 한 정도의 짧은 관측을 마치고 두근거리는 설렘을 품은 채 다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