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와 효수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에 신규교사로 발령이 났다. 당시 특수교육대상 학생은 단 두 명이었다. 일반학급 인원도 보통 두 세명이었고 많아야 반에 다섯 명 정도였다. 나의 첫 교실인 어울림반은 옆 반과 가벽을 세워서 만든 반쪽짜리 특수학급이었는데, 옆 반 애들이 말하는 소리나 수업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작은 교실이었다. 개학일 며칠 전 입도(入島)를 하고, 곧 만나게 될 아이들을 상상하면서 어울림반을 쓸고 닦으며 출근을 기다렸다. 캐비닛에 빼곡한 각종 교구나 여러 가지 기기들로 인해 조금 정신없긴 했지만 복작복작한 교실이 좋았다.
4월 첫 출근날, 나의 첫 제자를 만났을 때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낯선 나를 바라보는 작고 마른 남자아이. 그리고 똑같이 작지만 조금 통통한 여자아이. 날 쳐다보는 투명하고 순수한 눈빛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교단에 처음 서는 날’.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으로 수백 번은 그려왔던 순간인데, 그날 내가 느낀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만 하다가 시험 하나 붙었을 뿐인데, 갑자기 ‘선생님’이라며 교실에 들어선 꼴이 마치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신규교사 집합연수도 없었다.) 제자와의 만남. 그걸 실제로 맞닥뜨리니 막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는 학창 시절 도합 십여 년을 학생의 위치로 있다가 교사로서 처음 교단에 서게 되는 신규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어쩌면 부담감. 그리고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무거울 책임감 같은 것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이 내 마음속에 파도처럼 들어왔다.
학생들은 교사와 교육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해가 바뀌면 2월 말 즈음 새로운 담임의 연락을 받게 되고, 그렇게 주어지는 대로 1년을 보낸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5년이 지난 지금에도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면 이때의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1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