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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쌤 May 04. 2024

왜 특수교사를 했어?

내가 교사가 된 이유

  “국어, 영어, 사회… 많은 교과 중에 왜 특수교사가 되셨어요?”

  “혹시 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분이 있어요?”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남들에게 직업 소개를 할 때 필연적으로 듣게 되는 질문이다. 처음 내가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나조차도 내가 왜 하필 특수교사가 되기로 다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꽤 당혹스러웠었다. 특수교육과에 진학해 보니 실제로 가까운 친척이나 형제자매에게 장애가 있어 이쪽 길을 선택했다는 동기들이 꽤 많았다. 음, 나는 남들이 원하는 그런 거창한 스토리는 없는데. 그러게. 난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 2010년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당시 우리 반에는 특수학급 아이들이 두 명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적장애 2급에서 3급 정도의 친구들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급에 특수반 아이가 있는 게 처음이라며, 학급 반장이었던 나에게 그 아이들을 좀 챙겨주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자리도 일부러 짝꿍으로 앉고, 특수학생 도우미로 봉사점수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보통 일반학교에 있는 특수학급 학생은 반일제로 통합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오전에는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특수반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말한다. 그 친구들 또한 반일제 통합으로 우리 반에서는 4교시까지만 수업을 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파오는 일은 과학 시간에 일어났다. 과학 선생님은 갈색 긴 파마머리의 무서운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6교시 수업 마칠 즈음 다음 시간에 사용할 과학실험 준비물로 30cm 자를 가져오라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다음 날 과학 시간은 오전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특수학급 아이들은 오후에는 우리 반에서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에 준비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생님은 그 사실을 미처 간과하고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들을 전부 앞으로 불러내셨고 한 명씩 매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그 시절에는 아직 체벌이 만연했다.) 특수학급 학생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나는 특수학생 도우미로서 선생님께 얘들은 어제 자리에 없어서 준비물 있는 걸 몰랐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친구들이 매 맞는 무서운 분위기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말을 하지 못했다. 매를 맞고 자리로 돌아온 내 짝꿍의 빨갛게 부어오른 손바닥을 보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미안했다. 그리고 나의 용기 없는 행동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과학수업이 끝난 후 나는 담임 선생님께 달려갔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내 짝꿍과 다른 특수반 친구 어머님 두 명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날부터 나는 수업 준비물과 숙제가 있는 날이면 친구 어머님들께 연락을 드리기 시작했고 어머님들은 내게 줄곧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그리고 짝꿍이 집에서 내 얘기를 자주 한다며, 이런 적은 처음인데 혹시 생일파티를 열면 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날의 감정은 내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보람이었다. 이때부터였을 거다. 이 아이들에게 뭔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생일파티가 열리기도 전, 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 그 친구들은 일반학교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날 이후 난 특수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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