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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에로화이바 Nov 25. 2024

[주저리주저리] 할머니를 찾아서

안녕하세요, 할머니

태어난 뒤 줄곧 엄마, 아빠, 동생으로 이루어진 핵가족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조부모님에 대해서는 아주 먼 감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사람들,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전해들은 할머니는 못배운 게 한이 되어 다섯 딸을 다 대학보낸 분이셨고, 해맑은 할아버지와 사시느라 실질적으로 가장 역할을 도맡으신, 여장부 같은 분이셨다. 엄마마저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아, 명절에 보는, 요리를 맛나게 하시는 할머니가 내가 가진 기억의 전부였다.



지난 봄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는 완전히 혼자가 되셨는데, 이로서 내 생애 처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네 명의 이모는 돌아가며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에 바쁘셨다.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라는 이모들의 권유를 물리치시며, "결국 혼자 지내야할텐데, 얼른 적응해야지" 하셨다. 그럼에도 70년이 넘는 생활을 함께한 할아버지를 두고 할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팍 쇠셔서, 멀리 내가 바라보기에도 참 힘들어 보이셨다.



할머니 댁을 몇 번이나 다녀오던 엄마는,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가 재미났는지 내게 전해주곤 했다. 엄마는 다섯 딸 중 가장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짧았는데(할머니는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모들하고 있으니 나는 아는 게 없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을 한번에 비워내시려는 것인지, 이야기 보따리를 단숨에 풀어내셨는데, 그 이야기가 따뜻하기도 또 퍽 슬프기도 해서 홀린 듯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할머니 댁에 다녀오면 엄마는 행복해보였다. 그당시 뭐가 그리 속시끄러우셨는지 엄마는 꽤나 예민하게 굴었는데, 할머니 댁에만 다녀오면 소녀처럼 즐거워하곤 했다.



추석 다음날, 엄마 따라 나도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혼자 있는게 익숙해지셨는지 무표정하게 우리를 맞으셨는데, 이내 즐거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하셨다. 코끼리가 나오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는, "아니 저놈들은 몸은 저렇게 큰데 눈은 왜저리 쪼매나냐?"하고 실없는 소리를 하셔서, 삼대가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나는 할머니를 닮고 싶은 때가 꽤 많아서, 막연히 할머니는 어떤 슬픔도, 결핍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네", 하시거나 "우리 살던 곳은 집성촌이라 남자가 따라다니고 뭐 이런게 없었어"하실 때, 충격까지 받았던 것 같다. 



할머니의 삶은 가벼운 순간보다는, 어쩌면 힘든 순간들이 훨씬 많았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다정하신 분이라 할머니가 학교를 다녀오면 물을 따뜻하게 데워두었다가 손을 씻겨주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밤마다 화장실 가는게 무서워 아버지를 깨우면, 아무소리 없이 뒷간 앞에서 기다려주셨단다. 증조할머니가 "다 큰 지지배가 겁도 많고 유난이다"라고 구박해도 말이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때 반 대표로 한국 무용을 추었다고 한다. 말씀은 그저 한 반, 작은 발표회였다지만, 그 안에 담긴 그리움이 정겨우면서 슬펐다. 나는 줄곧 우리 엄마가 누굴 닮아 저리도 발랄한가, 궁금했는데, 그게 꼭 할머니한테서 온 것이었다는 게 참.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 할머니는 돈버느라 안해본 일이 없었다. 엄마는 무거운 이야기를 싫어하시는데, 그럼에도 종종 할머니가 겨울철 배달을 하느라 다리가 다 터져서 피가 났다는 얘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해오면, 뒷수습은 할머니 몫이었다. 심지어 외상값 안갚고 도망가던 손님을 쫓아간 것도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었다.






전후, 가난했던 시절 고생한게 비단 우리 할머니 뿐이었겠냐마는, 그 고생을 딛고 지금 내가 누리는 안락한 생활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종종 엄마를 따라 할머니를 뵈러 가기 시작했는데, 엄마와 다툼이 있던 어느날,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왜 엄마를 안 혼내고 키웠어요?"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할머니는 여느날처럼 담담하게 둘째딸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 위로 죽은 언니가 둘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나는 한 살에 아파 죽었고, 또 하나는 뛰어다닐 나이께쯤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 둘째 딸이 할머니를 꼭 닮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말만 나오면 어제 일처럼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할머니가 둘째 딸을 낳았을 때, 할머니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친할머니가 늦둥이 막내딸을 키우고 계셨다고 한다. 둘이 나이가 겹치니 애들끼리 종종 부딪히곤 했는데, 그 날도 싸움이 났었나보다. 그런데 엄마의 친할머니가, 어린 이모 발을 잡고 거꾸로 매달아 들어 떨어뜨리는 시늉을 하며 혼냈다고 한다. 애가 밤새 놀라 잠을 못자고 우는데, 할머니가 속상한 마음에 시어머니에게 낼 화를 우는 둘째딸에게 내셨었나 보다.



놀란 이모는 더 울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시름시름 앓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나는 죽어 걔한테 가서 사과해야한다고 우시는데, 나는 주책스럽게 왜 눈물이 터지는지. 엄마도 어릴 때 겁이 많아 한 번 혼을 냈더니 밤새 잠을 설치더란다. 그래서 그 날 이후 다섯 딸, 그 누구 하나 혼내지 않으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꺼내놓으신 시간들은, 날올과 씨올처럼 얽혀서 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는 그리 못살아보고 가네, 하시면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아 가만히 그 말을 곱씹는다. 참말로 할머니는, 그리 고생만 하시다 가시고, 그것이 내 새끼와 그 자식새끼들 배불리는 일로는 채워지지 않을 아쉬움이겠지.




인생이란, 무얼까.




그럼에도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또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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