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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y 20. 2024

엄마가 되어 받은 선물

관계의 소중함|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이들

마흔 넷이라는 늦은 나이, 3년 가까이 시험관을 하며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한 뒤 아기를 가졌다. 40도 가까운 고열과 오한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생사를 넘나들다 태반조기박리로 예정보다 한 달 빨리 아기를 만났는데, 나의 소중한 '착붙 매미'는 이제 9개월 11일 차 엉아가 되었다.


우리 모자는 한 달가량을  각각 니큐에, 산부인과 병동에 있다 조리원으로 갔다. 아기보다 더 오래 입원한 엄마여서 애틋한 마음이 더했던 것 같다.


가끔씩 아기나 내가 병원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거의 집에만 머무르고 있다.

백일 전까진 아기가 너무 어렸고, 내 몸이 성치  않았으며, 백일이 지나서는 코로나가 무서워 집콕으로, 둘이  딱 붙어 있었다. 떨어지기만 하면 울어대는 아기는 그때부터 별명이 '매미'가 되었다.


첫 외출이 5개월이 지나 감사 예배 드리러 간 교회였는데 다녀오자마자 아기가 독감에 걸렸다.  전인 작년 추석에는 신랑이 코로나여서 집에 ! 하고 있었고, 이번 설에는 신랑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집에 콕! 붙어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지난달에는 나와 아기가 코로나에 걸려서 집에 콕!


이쯤 되니 억울하다.

우리 모자는 교회와 병원, 그리고 장난남 빌리러 간 게 다인데...


슬펐다...

늦은 나이 육아로 온몸이 아프고 경험이 없다 보니 아기와 관련된 소소한 일에도 온몸에 땀이 흥건해진다.

집에만 있다 보니 엄마의 세상은 너무 갑갑하다.


거실에 우드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아이와 하루종일 있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 날씨가 변하는 것...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크지만, 그만큼 고된 육아는 나를 너무 지치고 힘들게 했다.

주변에서는 '노산'이라서 그렇다고도 했고, '원래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여서 그렇다고도 했다.


가끔씩 SNS나 가족, 지인들에게 '힘들다, 힘들다'라고 토로했었는데  어떤 날은 잠들기 전 생각하다 혼자 민망해진다. 그야말로 이불킥!


'나 혼자 아기 키우는 것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아이 키우고 일하며 살았는데, 나만 이렇게 엄살을 부릴 일인가...'

살짝 부끄럽고 낯 뜨거워 다음부터는 입을 꽉! 다물기로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연신  '아이고~ 아이고~'


그러다 보니 사람이 편협해지기도 하는 것 같고, 짜증도 늘고...

열심히 일하고 들어온 신랑에게 싸울 기세로 트집을 잡고 화를 낸다.

나의 힘듦으로 신랑의 피곤함을 이겨버린다.

세상의 모든 것에 화가 나서 악을 쓰기도 하고, 혼자 서럽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로서의 삶에 평안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이의 눈에 보일두렵다.

출근할 때 아기와 곤히 자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다녀올게'라고 인사하는 신랑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9개월을 키웠다.


손 마디마디가 부러질 것 같고, 원래 좋지 않았던 허리는 아이를 들고  고를 반복하다 보니, 통증이 내려와 골반까지 이르렀다.

몸을 질질 끌고 아이를 보며 주말 남편 찬스를 애타게 기다린다. 여전히 신랑에게는 나의  힘듦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하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다.


메마른 찰흙인형이 되어 흙이 건조해지면 갈라져 틈이 생기듯,  나의 손가락은 마디마디 부러질 듯한 고통으로 아프다. 그렇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를 악물고 내 곁에 아이를 본다.

그럴 때면 문득, '나의 엄마가, 그립고 고맙다.'


이쯤 되면 집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나 바깥 외출을 하지 그랬냐'고도하겠지만...

'날이 추워서...',

'아이가 어려서...'

'코로나 때문에...'

'아이가 힘들까 봐..'

여러 모양으로 집콕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소심한 엄마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전에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세상이 보인다.

#1.
(아기가 없을 때) 아이가  있는 집에 가면 분명 아이 엄마는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시선이 아이한테 가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집중하지 않는 것도 같다.
대화가 뚝뚝 끊긴 채, 아기 엄마는 이리저리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느라 분주하다.
내가 왜 이 대화를 지속하고 있는지 정말 아주아주 살짝 아쉽다.
덩달아 정신이 없이 대화를 지속하다 집에 돌아온다.

#2.
아기를 낳은 친구들과 지인들의 SNS에 사진이 올라온다. 가족 나들이 사진인데 엄마의 복장은 트레이닝복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거나, 엄마의 뒷모습만 올라와 있다. 머리는 늘 질끈 묶여있다.

이제야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나의 옷이 늘 잠옷인 이유를 알겠다. 외출할 때 (수련활동 때 학생 인솔하며 밤에 입으려고 사놨던)  트레이닝복을 소중히 꺼내 입게 되는 이유를 알았다.

잠옷이 여러 개인 것이 새삼 감사하다.

난 돌려 입기가 가능한 잠옷 부자였다.


어느새 머리는 감은 지 4일이 되었다.

커피는 아침부터 얼음을 잔뜩 넣어 먹어야 하지만, 양치는 하지 않은 것도 같다.

고양이 세수를 겨우 하고 아이를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의 모든 루틴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소비 여왕이었던 내가 니트나 원피스 등의 예쁜 옷을 옷장에 키핑 해두고, 면으로 된 맨투맨 T에 입지 않던 트레이닝 바지(운동복)를 꺼내 입었다.

감지 않은 머리는 대충 말아 올리거나, 어울리지 않아 잘 쓰지 않던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이제 조금씩 집을 나서 병원, 마트, 백화점, 레스토랑을 돌아다닌다.


가족과 오랜만에 집 앞에라도 산책을 나와 사진을 남기고 싶지만 다크서클, 피곤함이  묻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나의 얼굴에 주춤거리게 된다.


당이 많은 카페모카나 바닐라 라테, 초콜릿 우유가 시시때때로 당긴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하지만 생경한 이 슬픈 변화를 유일하게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나의 오랜 친구들... 동료 선생님들...

언니, 동생들...

이미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 있는 엄마들은, 나의 사정을 다 안다.


옆에서 잠을 청하는 신랑도 모르는 아픔과 우울함을 그네들은 다 이해하고 알아준다.

웃프지만 사실이다.


외출하려면 '이민 가방'을 싸야 하는 내 형편을 알아,

아이를 안고 손가락 마디마디,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파 절뚝거리는 나를 알아,


가끔씩 조심스럽게

'너만 괜찮으면...', '선생님만 괜찮으면...', '언니만 괜찮으면...'이라 물으며

커피와 먹을 것을 사가지고 아기와 내가 있는 집으로 다녀가는 나의  외로움을 아는 사람들..

아기를 안고 있을 테니 나에게 좀 쉬라 하고, 시켜놓은 음식을 먼저 먹으라 한다.


강원도 태백서 아기 침대와 유모차를 실어 달려온 나의 오랜 절친, 늘 고마운 동반.


아기 옷이나 책을 사서, 또는 물려줄 것을 바리바리 챙겨서 오는 대학 동기들.


엄마들이 쓰는 수레에 장난감을 잔뜩 싣고 할 걸음에 달려와 나에게 '쓰담쓰담, 토닥토닥'을 건네는 (학교 인연) 동료 선생님들, 지인들.


퇴근길에 "오늘은 괜찮았나요?"를 물어주는 형님의 고마운 마음.

'미안하고, 고맙다'는 나에게 '괜찮다'며 오히려 걱정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건네준다.


마음이 힘들 때면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으로 '그때는 원래 다 힘들다.', '당연히 화가 난다.', '잘 먹어야 한다.', '시간이 약이다.'라고 말해준다.


각박해졌던 나의 마음을 말랑하고 촉촉하게 그네들이 만져준다.


출산 이후 나는 많은 지인들의 방문을 받았다. 살면서 나의 집을 이렇게 오픈한 적이 있나 싶다.

이제는 청소가 안된 채로도 사람을 맞이한다. 성격상 밤을 새워서라도 치워야 할 것만 같은데,  육아를 하면서 절반쯤 내려놓게 되니 이제 몇 번 다녀간 지인들에게는 얼굴도, 집안 꼴도 민낯이다.

그럼에도 나를 민망하게 하지 않는 그네들이다.


아기를 낳기 전보다 지인들과의 연락이 잦아졌다.

모두 힘들어할 나를 찾아주는 고마운 마음들이다.

내 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았나 싶다.


오늘도 대학교 때 친구 가족이 잠시 다녀갔다. 차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네 식구가 와서 동화책, 장난감, (한달살이로 치앙마이에서 사 온) 건망고와 프로폴리스까지 건넨다.


엘리베이터가 교체 중이라 4층까지 네 가족이 다섯 박스를  지런히 날라준다.


저녁 대접도 못하고 신랑이 출장에서 사 온 과자박스와 기프티콘을 건네며 짧은 인사를 나눈다.

같이 나가서 밥도 못 먹는다고 아쉬워하자 '아기 어릴 때는 다 그렇다'며 손을 잡아주고는 떠난다.

건네준 쇼핑백 안에는 아이스팩과 함께 담긴 반찬통이 2개 있다.


카레와 짜장.

딸들 먹이느라 야채들을 다 다져 만든 건데 혼자 아이 볼 때 챙겨 먹으란다...


눈물이 핑 돈다.  

'나...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과 함께 살고 있구나...'


아이를 낳고 보니 주변에 감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들이 너무 많다.


살갑지도 않고 인사를 자주 전하는 사람도 아닌 나를,

아이 낳고는 키우느라 바빠

그네들의 말의 반은 건너뛰어 듣고,

통화를 하면서도 아이를 바라보고 챙기느라

종종 정신줄을 놓는 나를,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 수발드느라

눈도 못 마주치고 말을 뚝뚝 끊어먹는 나를,

그저 '다 이해한다' 하며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들.


이제 나는, 날씨가 어떻게 변하고,

계절이 언제 바뀌었는지, 안다.

나를 찾아주는 지인들의 향기에서,

메시지에 실려오는 안부와 위로의 문자에서.


따뜻한 봄 냄새,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한 요즘이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선물인 아기를 만나면서, 나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고마운 지인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신랑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마워, 당신.)


다짐한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눈길을 머금은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고...


감사해요. 

나의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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