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May 22. 2024

엄마가 건네준 꽃무늬 잠옷

나의 부모님|그럼에도 잔소리가 좋은 이유

나는 엄마와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아기가 없을 때도 그랬다.

우리에게 매미가 찾아온 그날 이후부터는 엄마와 연락이 더 잦아졌다.


첫 손주인 데다, 결혼 생각이 없는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는 손주를 볼 수 없으니 우리 매미가 엄마에게는 유일한 손주이기도 하다.


첫 출산치고는 많이 늦은 편이었던 마흔네 살의 딸이었다.

딸이 늦깎이 엄마가 되어 초보티가 역력한 데다,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다 하니, 엄마는 걱정이 되었는지 아기가 백일이 넘을 때까지 주말마다 우리 모자를 보러 오셨다.


매미가 11개월에 접어든 지금은 엄마도 일을 하시기에 주로 영상 통화나 페이스 톡으로 나와 우리 매미를 만난다.


매미만 보면 영상 속 엄마의 얼굴은 너무너무 행복한 표정이다.

그리고 모든 말의 끝은,

"에구에구 귀여워.",

"사랑스러워"이다.

그리고

 "할머~~ 니~해봐! 할머니 하면 십만 원"

(원래 오만 원이었는데 어느새 올랐다. 나는 제발 우리 매미가 "아빠!"보다 "할머니!"를 먼저 했으면-하고 생각한다.)


마치 세상에 이 세 문장밖에 없는 것처럼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는 매일 이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원래 엄마는 아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나와 동생, 둘이나 낳아 30년 넘게 아빠 병간호를 하며 귀하게 키워주셨는데 아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니 좀 놀라웠다.

'당신은 둘이나 낳아 힘들게 지금까지 전심으로 키우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우리 매미가 태어나고 보니, 너~무 예쁘단다.

내가 보낸 영상이나 사진을 매일 시시때때로 들여다보는 엄마를 보며 함께 살고 있는 남동생이 "그렇게 예뻐?" 하고 물으면 주저함 없이 단 칼에 "응! 너무. 봐봐. 이렇게 예쁘다." 하신단다.


매일 영상 통화를 하며 손주를 보여주는 나는 엄마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딸인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수리수리, 잔소리~'다.


이유식을 잘 안 먹어 속상하다 하면-

 "당분간 간식을 주지 말아라."

놀다가 어디서 다쳤는지 기저귀 갈 때 보니, 다리에 멍이 들어있었다 하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다칠 수 있으니 절대 한 눈 팔지 말아라."

집안일하느라 잠깐 아이를 혼자 두었다가 아기가 울었다 하면-

 "엄마가 아기를 안 보고 뭐 하는 거냐?"라 한다.


나도 다 알고 있는 건데 엄마는, 끊임이 없다.

'수리수리 잔소리~'

우리 매미가 내 자식이 아니라 엄마 자식인가 싶다.


체해서 아프다 하면-

"아기 엄마가 몸 안 돌보고, 아프면 어쩌냐? 빨리 약 먹어라. "

육아로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 하면-

집에 오실 때 "잘 듣는다"며 진통제와 각종 소화제, 파스, 두통약을 사 와 놓고 가신다.

그러고는 한 마디!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한다.


내 새끼 예뻐해 주고 손자 밖에 안 보이는 엄마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데, 가끔은 딸인 나보다 손주만 챙기는 게 살짝 서운하다.


그런데 엊그제  보통 때와 똑같이 영상통화를 한참 하며, 잔소리를 배부르게 듣고 끊으려는데 엄마가 그런다.


"엄마가 남대문에서 시원한 여름 실내복 하나 샀어. 너 맨날 아기 본다고 집에서 같은 잠옷만 입고 있어서."


엄마는 내가 잠옷 부자인 것을 모르고 있나 보다. 훗! (๑˃̵ᴗ˂̵)و


일요일, 친정에 들러 엄마가 사다 놓은 실내복을 받았다. 시원한 소재의 네이비 반팔 상/하 세트였다.

잔잔한 꽃무늬가 가득한.


좋으면서 괜히 "색이 좀 어두운 거 아니야?" 하니, 집에서 입더라도 밝은 색은 비칠 수 있고, 막입기에도 진한 색이 좋다 하시며 무엇보다  네이비가 제일 예뻐 보였다고, 하신다.


나는 "이것저것 그냥 입으면 되는데 뭐 하러 돈을 썼냐"라며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검은 비닐봉지에 다시 담아 가방에 넣고는 속으로.

'역시, 내 엄마야."


마흔 살이 훌쩍 넘어도 엄마에게 나는 아직 철부지다.

아직도 엄마의 잔소리가 필요하고,

그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딸.

나는 그런 엄마의 딸인 게 너무  감사하다.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의 딸과 칠십이 된 엄마.

(정확히 엄마한테 표현한 내 말은, '중년이 된 딸과 늙은 노모'였다.)


긴 세월, 딸과 엄마로 친구처럼 다투기도 많이 하고 가끔은 서로의 말에 빈정(?)이 상해 일부러 전화 안 하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아빠를 간병하며 사신 긴 세월,

엄마가 살아온 고단한 삶을 너무 잘 아는 나는 '엄마'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한다.


엄마는 아직도 당신 본인보다는 '나의 엄마'로 살아가고 계신다.

나에게 했던 '엄마란..'의 삶은,

내 엄마로서 '당신이 살아온 삶' 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집에 돌아와 건네받은 꽃무늬 잠옷을 세탁기에 넣으며,  나는 엄마의 예쁜 꽃밭을 마주한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예쁜 꽃밭.

그 안에서 잠시 나는 따뜻하고 뭉클하다.



육아로 정신없는 딸.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땡볕에서 일하는 엄마.


이번주 내내 서울대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엄마.

입맛이 없어 대충 끼니를 때운다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힘을 주고,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식사를 대접할 모녀의 데이트 시간하루 빨리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임소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