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우리 모자는 병원을 다녀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고열과 태반조기박리로 응급 수술을 해 아기를 낳았는데, 한 달 넘게 매일 40도의 고열과 오한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아기는 34주를 겨우 채우고 니큐로 들어갔고 입과 코에 줄과 호스를 달고 가쁜 호흡으로 작고 연약한 몸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으면서 수술한 부위 주변으로 수포가 생겨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수술 부위가 회복되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도 아기가 안겨 배 부분을 누르면 불편함이 많이 느껴졌다. 게다가 켈로이드가 심해져 수술 부위에 소위 '지렁이'가.. 꿈틀!
어제 혼자 아기 띠를 하고 진료를 받으러 간 나는 간호사님의 배려 덕에 치료를 받는 동안 매미를 맡길 수 있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도 듀오덤을 붙이고 스틱형 밤과 연고를 바르면서 약도 복용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냉동치료와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매미를 만난 영광의 상처이니 설사 내 몸에 지렁이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이제 11개월이 된 매미의 정기 검진으로 대학병원을 또 찾았다.
신랑도 반차를 내고 함께 갔는데 개월 수로 하면 이제 평균, 교정일로 하면 조금 작은 편이지만 잘 크고 있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주셨다.
태어나서 2~3차에 걸쳐 뇌 초음파, 심장 초음파, 망막검사, 사경 확인을 위한 초음파까지 많은 검사들을 해야 했지만 과정 과정마다 건강히 잘 성장해 준 우리 아들이 너무 대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
딤플도 걱정이 되어 여쭤봤는데 수술도 필요 없고 괜찮으니 다음번 검진 때 또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본래 의사 선생님 앞에 서면 두 손이 모아지는 공손함이 생기지만 아이 일에는 더욱 그렇게 된다.
우리 부부는 아기를 안고 연신 선생님의 말씀에 안도를 하고 감사를 표하고 끄덕이며 공손히 앉아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한다.
"아기가 자기 머리를 때리는 건 괜찮은가요!"
"허공을 보며 말을 하거나 웃는 거는요?"
- '다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 소파 위를 혼자 오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며 소소하게 사고를 치기 시작한 이 활발한 아기를 보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지만 모든 고단함과 어려움을 한순간에 잊게 해주는 아이의 존재는 이제 나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작게 태어난 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중환자실에서 조금씩 힘을 내 우리 곁에 와 준 선물 같은 아이.
'잘 크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세상이 환해지고 행복해진다.
웃음에 인색한 나에게도 웃음꽃이 핀다.
늦은 출근을 해야 하는 신랑과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잠이 든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함께 잠시 누웠다.
등을 돌리고 곤히 자는 아기를 자꾸 내 품으로 끌어안고 싶다.
작은 머리통이 내 품에 들어오는 순간 너무도 사랑스러운 이 아이를 느끼며 머리에 얼굴을 묻는다.
'아기가 크는 게 아쉽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마흔 다섯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 너무 어렵고 힘든 육아를 하고 있지만, 이 작은 생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의 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 아닌가?
가슴이 벅차고 감격에 젖는다.
이 마음을 평생토록 잔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하고 사랑 많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