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로 모인 늦여름 밤의 동아리방
물리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은 사실 잠깐의 정적과 함께 여유를 가져보고자 한 나의 은밀한 시도였다. 정의와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사람을 긴장시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도 나는 단 1초의 긴장과 순간도 이끌어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물리학’이 ‘사랑’과 같은 단어의 종류가 아님을 간과했기 때문인 듯했다.
화학전공 승원이 화학과 비교해 설명해 준 것이 이해가 쉽게 되었다. 화학이 물질 간의 반응과 상호작용에 대한 학문이라면 물리학은 물질과 시공간에서의 운동, 에너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화의 시작이 되었던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미시세계 즉,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둘의 이론에 대해 쉽고 알차게 들으며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정립 욕망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그 시대 양자역학으로 열린 폭탄의 시작이 또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거 있음 제발 얘기해 주라) 이야기해 보자면.. 폭탄의 원리는 핵의 양성자와 함께 있는 중성자에서 시작한다. 모든 양성자에는 그에 맞는 중성자가 함께 존재하는데 이 중성자는 양성자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중성자를 몇 개 제거하는 것이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라늄의 경우 238개나 되는 중성자와 양성자를 가지고 있다. U238이 238개의 무거운 케틀벨을 들고 있는 상태라 할 때 여기서 두 개의 중성자를 제거한 U236의 경우는 이완하며 안정적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론 이 안정된 상태가 곧 폭발이었다! 운동을 하다 잠시 멈추고 쉴 때 우리 몸은 열을 밖으로 배출하며 이 열이 말하자면 곧 폭발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내 막연한 시각에서 원자를 불안정하게 유도한 것이 폭발이라고 상상했다면, 사실은 안정된 상태로 유도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란 것이다. 어쩌면 이것까지도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상태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언어로 하는 것이라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우라늄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자연스레 방사능과 그것의 영향으로 흘러갔다. 방사능이 인간의 유전 정보를 어떻게 변질시켜서 비극적인 현상들을 만들어내는지. 나는 그럼 이 방사능이 제거하는 유전 정보와 그 빈자리를 대체하는 정보에 대해 완전히 통제 가능하게 된다면 인간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찰흙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것을 시도했던 것이 게놈 프로젝트라고 한다. 완전히 실패했으며 인간이 해독할 수 없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러니까 가능은 하지만 자연계가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가능은 하지만 자연계가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이 문장을 말한 이가 무엇을 느꼈을지, 그게 어떤 감각인지 이해하고 싶다. 이와 비슷한 것이 또 ‘무’라는 감각이다. 폭발에 대한 대화는 이제 우주로 솟아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한 점에서 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시작하기 전에는 무가 있었다.라고... 시작하는 이 세계의 과학이 내게는 너무나도 성경의 첫 구절처럼 느껴져 과학과 종교는 사실 크게 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감각할 수 없는 감각에 대한 의심과 의문은 12까지 나아간 다른 차원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약간은 허무로 흘러가는 듯하기도 했다. 우리의 차원 밖에선 아무 의미와 기능을 갖지 못하는 것들. 과학은 계속해서 그 밖을 탐험하고자 하고, 철학은 계속해서 이 안, 시간과 공간밖엔 이야기할 수 없다. 과학은 철학의 존재를 위협하며 철학은 어쩌면 과학을 변질시킨다. 서로가 서로를 위협함에도 문학전공, 화학전공, 조소전공, 통계학전공 학생들이 모인 이상한 공간에서 결국 함께라는 게 ~ 알 수 없고 재밌는 세계이다
승우, 승원, 유상, 재이와 함께한 8월 23일의 여름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