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원시인씨!

사이보그의 정화의식을 관찰하며

by 진가인



이 글은 인간이 동물이라는 아주 명백하고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될 것이다. 이야기하기 앞서, 반대로 질문해 보자. 인간은 정말 동물일까? 내게 이 황당한 생각을 하게 만든 친구가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이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날부터 수능시험날까지의 모든 날의 계획, 그러니까 이 날은 문제집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풀 것인지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짜 두고, 그것을 완벽하게 시행해야만 했던, 그야말로 컴퓨터 같은 친구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행여 모종의 사건으로 어떤 날의 계획을 불가피하게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다시 첫날로 돌아가 모든 계획을 다시 세우고 새 문제집을 사 첫 페이지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새 책을 펴기 전마다 책의 커버를 쓰다듬는 그 친구만의 특정한 손짓이 있었고, 1월 1일에 무조건 새로운 다이어리로 기록을 시작해 야 했다. 친구는 본인의 이러한 강박증을 ‘의식’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는데,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기 위한 무당들의 정화의식과 비슷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불완전한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시도가 그것의 물리적인 불가능으로 인해 어떤 정신적인 의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완벽한 점수 기계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 원시시대에나 이루어질 것 같은 터무니없는 의식이라니! 내게 컴퓨터 마냥 여겨지던 그 친구에게서 난 처음으로 동굴에 그림을 그리고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원시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항상 부끄럽고 받아들이기 힘들기만 하다. 나의 경우에서도 그렇다. 나는 약간의 발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데, 발표를 할 때마다 머리로는 괜찮다 해도 목소리와 다리는 머리와 따로 노는 듯 항상 덜덜 떨려왔다. 이를 견딜 수 없던 나는 언젠가 이 현상의 이유를 투쟁-도피 현상에 대해 알게 되며 찾을 수 있었다. 투쟁- 도피 현상은 생존을 위해 발전한 메커니즘 중 하나로 동물들이 위협을 느낄 경우, 두 가지 대처 방식 중 하나를 취하는 것이다. 하나는 투쟁 반응으로 적과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피 반응으로 적을 피하는 것. 인간 또한 이와 같은 생존적 대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발표 상황에 적용해 보자면 모두가 본인을 주시하는 것이 일종의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이에 따라 내면의 투쟁 도피 현상으로 대처를 위한 몸의 준비가 신체의 긴장과 떨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내면적인 동물성이 작용하는 결과로, 이 사실을 인지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우리 내면의 없앨 수 없는 이러한 동물성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자 발표가 어려운 나를 조금은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동굴에서 거대한 아파트로, 사냥보단 우아한 쇼핑으로, 종이에 목탄보단 번쩍이는 휴대용 화면에 플라스틱 연필을 쓰는 고상한 우리의 안엔 그럼에도 끊임없이 먹고 싸며 생존하고자 투쟁해온 동물이 존재한다. 무언가 대단한 걸 이루어 내지 않아도 우리의 존재이유는 그저 존재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도 완벽하고 정교한 삶을 추구하며 우리 내면의 동물성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계발전 시대와 동물-인간다움을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잠시 우리 안에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있을 작은 원시인씨와 인사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안녕하세요, 원시인씨!


-2023. 10. 6 일 노트

끄적여본 유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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