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언츠의 슈퍼스타, 그 특별함
롯데만 슈퍼스타가 있는가? 다른 구단도 차고 넘친다. 오히려 다른 팀에 더 많을 수도 있다. 삼성의 이승엽, 양준혁이 그랬고, 두산의 박철순, 김재환, 엘지의 김현수, 기아의 선동렬, 이종범, 최형우, 조계현, 한화의 송진우, 정민철, 류현진, 키움의 이정후, 김하성, 박병호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각 팀마다 즐비하였다. 심지어 위 선수들 중 아직도 현역인 선수도 꽤 된다.
그러나, 롯데의 슈퍼스타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단순히 야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는 스타라서 더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고, 극복 스토리이기도 하고, 헌신 스토리이기도 하다. 리더십 스토리이기도 하고, 막내의 스토리일 때도 있었다.
먼저 이대호 선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잘 커서 대스타가 되었다. 야구라는 운동 역시 어려운 환경보다는 부유한 환경에서 더 잘하기 쉬운 운동이다. 야구 장비는 비싸고,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잘 배워야 하며, 운동을 할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함께 공을 주고받거나 던지고 쳐줄 동료가 필요하며, 최소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므로 합숙도 필요하다. 학생 시절에는 무엇보다도 잘 먹어야 한다. TV 방송 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가 이대호 선수를 키웠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다른 선수들만큼 금전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전지훈련비 등 여러 비용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른 선수의 학부형 중 누군가가 그런 문제로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이대호 선수는 꿋꿋하게, 너무도 씩씩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고, 할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고 한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돼요?‘, ’다른 보호자들은 다해 주는데 왜 나만...‘이라는 식의 반항도, 사춘기도 없이 말이다.
성공 이후 그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 이야기도 팬들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한다.
박정태 선수는 어떤가? 롯데자이언츠 선수들에게 들이닥치는 불운은 클러치히터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박정태 선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3년 5월경 주루 도중 다른 팀 야수와 강하게 충돌하여 발목 복합 골절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수 있다는 의사의 초기 진단이 있었으나 뼈를 깎는 재활을 거쳐 1995년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기적과도 같았다. 그와 같은 오뚝이 근성, 그리고 그라운드에서의 근성 어린 플레이 자체로도 이미 영화 한 편 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1999년 시즌의 주장으로 플레이오프 7차전 명승부를 이끈 영웅이기도 하다.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우리 오늘 지면 다 죽자”라는 내용이었다고 알려진다.
그 역시 부유한 가정에서 손쉽게 야구를 한 축에 속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박정태 선수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야구를 열심히 했고, 훗날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소년원에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회상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비행청소년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다. 재단법인을 만들어 소년원 출신을 포함한 어려운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기도 하고, 때로는 형님으로, 어떤 때에는 삼촌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야구선수로 성공한 것 자체도 스토리이지만, 은퇴한 이후의 삶도 또 하나의 영화 스토리감이다.
불멸의 최동원 선수... 본인은 프로에 입단한 지 불과 몇 해만에 대스타가 되어, 마음먹기에 따라 어려운 선수들을 외면하고 거대한 부를 모을 수 있었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어려운 선수들을 위해 선수협을 조직한다. 그 당시 최저임금보다 낮은 연봉으로 선수생활을 하는 후배들이 보였고, 동료 선수들의 은퇴 후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영웅의 넓은 마음을 품지 못했다. 그 대가로 트레이드가 되고, 이적한 팀도 좋은 구단이기는 하지만 그가 원치 않았던 팀이었기에 아쉽게도 너무 일찍 은퇴하는 불운... 그 이후에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롯데가 아닌 다른 구단을 전전했다. 시대에 앞서 동료를 배려한 그의 마음씀씀이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리더십의 스토리이다.
염종석 선수의 여러 차례 수술받은 흔적... 가끔 그의 어깨 부위 사진이 자료화면으로 뜨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염종석 선수는 막내 스토리다. 신인 때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 또는 구원으로 뛰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탁월한 기량이 그로 하여금 쫄지않게 만들어주었다. 신인 당시의 무리한 투구로 인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그 치료과정도, 재활과정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인 시즌이었던 1992년 불꽃 투혼을 불사른 염종석 선수는 세월이 지난 후 어떤 인터뷰 자리에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그렇게 투혼을 불사르겠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멋있다. 부산 사나이답고, 롯데 팬들이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다. 참고로 그 역시 대학에 진학하려 하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1992년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스토리가 있는 롯데의 슈퍼스타...
최동원 선수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박정태 선수나 이대호 선수, 염종석 선수 등도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부유한 운동선수의 아들이 슈퍼스타가 된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러한 우리 롯데 선수들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다. 롯데 팬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