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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iami May 11. 2024

첫 발을 내딛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12살 때  전라남도, 구례, 작은 시골마을에서 서울로 전학했다. 아버지의 뜻과 나의 호기심이 더해진 결정이었다. 용산구에 살면서 용산여자 중학교와 배화여자 고등학교를 마쳤다. 1986년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가족과 나는 매우 기뻤다. 희망을 가지고, 취직하기 위해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영문과를 졸업한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의욕에 차 있었으나, 서류 통과를 못했거나, 인터뷰에서 탈락했다. 나를 몰라보는 그들을 원망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학원에 등록해서 점수도 올렸다. 여전히, 취업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이런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결혼을 생각했다. 소개팅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성과가 없었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나의 외모와 말주변이 부족하다 여기면서 자존감이 땅으로 떨어졌다. 외로웠다. 우울한 마음은 몸을 약하게 했다. 자주 아프다가,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로 불행의 늪에 빠졌다. 좀 더 나은  훗날을 기약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나를 챙기기 위해. 


1년에 걸쳐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직업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고용시장에서 나의 경쟁력은 더 약해져 있었다. 물러설 수가 없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한국은 88 올림픽 대비로 시끌벅적할 때였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표어 아래, 큰 도로가 뚫리고, 많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경기장과 외국호텔 체인이 들어섰다. 외국 관광객이 엄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를 나는 기회가 오고 있다고 바꾸어 들었다. 전공을 살려 영어 가이드 자격증을 땄다.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역할로 올림픽 열기를 맛보고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다행히, 가이드 일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해졌다. 나를 둘러쌌던 칠흑의 밤이 서서히 새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 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올라갔다. 영어가 향상되었고, 외국인의 성향도 엿볼 수 있었다. 물 만난 고기 마냥 88 올림픽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관광객은 계속 증가했다. 공항으로, 호텔로, 관광지로 바쁘게 가이드했다.  관광산업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기세를 몰아 관광경영 대학원에 진학했다.  호텔리어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힐튼 호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유능한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다.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쓴 책 “세상은 넓고 할 일 은 많다” 가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대학원 친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얘기했고, 몇 친구들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Hospitality Management) 산업과 학업 분야에서 선두인 나라였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면서 나도 미국으로 유학이란 생각에 빠졌다. 실행에 옮겼다. 나는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의 호텔경영 대학원에 원서를 보냈고 한 달 뒤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미국문을 두드렸고 열렸다.


막상, 문이 열리자 걱정이 들어왔다. 이역만리에서 혼자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의아했다. 그러다, 왜 세상으로 나가야 되는지를 생각했다. 우물이 세상 전부인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지 않았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이제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 전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를 이끌고 있는 중심지로 가서 공부하고 경험하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위해서 떠나자.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새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려움을 버리고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했다.  1990년 8월 13일, 나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첫 발을 내디뎠다.


34년 전 일이다. 그 사이 나는 호텔리어가 되었고 경력도 쌓았다. 가정도 꾸렸다. 나의 삶은 몇 번의  좌절과 그 뒤에 온 성공으로 채워져 있다. 장벽을 만나 상처받았을 때, 나를 돌보기 위해 쉬었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재충전을 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다시 시도했을 때, 기회가 왔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급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흐름을 읽고 따르면, 운이 트였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필요할 때는 환경을 바꾸어도 보았다.  목표를 위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고 결과에 순종했다. 이렇게 살아온, 굴곡이 있었지만 평탄한 인생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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