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ook H Sep 08. 2024

탈피

상대적인 건 행복일까? 오만일까?

딸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버거울 때가 많다.

엄마를 하루 동안 수십 번은 불러대고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왜 안보냐 타박이고 그렇게 녀석이 불만이 쌓이면 애꿎은 반려견에게 화풀이를 하는 모습에 엄만 또 힘들어진다.


안 되겠다.


"주하야, 우리 마트 가자."


시골 하나로 마트는 늘 정겹다.

딸아이와 팔짱을 끼고 문을 열고 들어간 마트 입구엔 우리가 들어오기 전 막 출입구를 통과해 장을 보고 있는 부자가 눈에 띄었다. 가끔 보는 장애인 가족이다. 우리처럼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어 보였고 아빠가 늘 데리고 다녔다.


아들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고 그런 아들이 실수할까 아빠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엄마, 이쁘지? 엄마!! 뭐 해!!! 나 안 봐!!!"


그런 엄마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는 딸내미는 앞서 가면서 본인이 골라 입은 미니스커트를 살포시 들어 올리고 뾰족구두의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꽤나 흡족한지 마트에서 한 바퀴 뱅그르르 돌고 있다.


"엄마, 나 이쁘지?"


"어, 그래그래 이뻐."


"뭐야~! 기분 나빠.

엄마, 나 이거 사줘."


딸아이는 사고 싶은 것도 많다.


그렇게 딸을 대하며 앞서 던 부자를 지나쳤다.

부자는 늘 그렇게 해온 듯이 뒷사람에게 먼저 가라 기다려주었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그제야 움직이는 듯 보였다.


딸아이가 참 힘들다 생각하고 나왔는데 행복은 참 상대적이었다.  마트 안에서의 딸아이는 참 깜찍하고 예뻤다.


상대적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건 내가 참 싫어하는 마인드이면서 내가 그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월감 까진 아니어도 같은 장애인 가족으로서 짠해졌다고 해야 할까....


장애인 가족에게 짠 한 마음이 드는 건 어찌 보면 오만함에서 오는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 보지 않으려 애써왔던 것 같다. 우리 또한 그런 짠한 시선이 고맙다기보다 오만함으로 느껴졌으니....


장애인 가족에게 짠한 동정의 시선이 아닌 그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존중받을 때 그제야 엄마인 너에게도 미소가 번졌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다. 살면서 이러한 경험들은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삶의 깊이나 자세를 더 배울 수 있었고 겸손한 나를 만들어 주었다. 딸이 내 옆에 있는 한 나는 늘 겸손을 배운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힘들 때 그 힘든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 아닌 상대에게 의지하는 마음으로 위로를 얻기도 한다. 

상대가 내 맘 같지 않으면 화를 내고 싸움이 된다.


한데 중요한 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그 어떤 누구가 아닌 나 자신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보다 그 힘든 마음을 나 자신 스스로가 알아주고 내가 나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줄 때 진정한 위로가 된다.  


장애가 있는 딸아이 덕분에 엄마란 사람은 항상 엄마 너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볼 줄 아는 습관이 생겼다. 너란 사람을 바라보며 오늘 넌 어땠었나. 딸아이에게 넌 어떤 엄마였을까.  늘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위로해 주며 살았던 것 같다.


동물이나 곤충은 여러 차례에 거쳐 허물을 벗으며 성장해 나간다. 곤충의 탈피를 통한 성장의 모습은 인간의 삶에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여러 차례 아픔을 경험해 가며 고통이란 허물을 벗고 거듭 탈피를 통한 반복은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고통의 절차를 고서야 비로소.....


너의 삶은 빛이 되어 날아오르리......



그림. 허선숙

작품제목 :  탈피

20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