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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Mar 13. 2021

크로#31.자그레브3:비오는날 묘지 서성이는 이방인 둘

위작이 대부분이라는 미마라 박물관이라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으니 좋다.

미로고이 묘지 :

https://www.infozagreb.hr/media/documents/mirogoj_engleski.pdf

( 묘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자료 발췌함 )

'꼭 보라'는 추천 따라, 우중충한 날씨에 꾸역꾸역 묘지를 찾아 나선다.

겸해서 시내를 벗어난  외곽를 보려는 목적이 더 크다.

자그레브 대성당 앞 정류장에서 106번 버스(203, 226번도 가능)로 3.3km 거리를 8분, 6정류장 만에 도착했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자마자, 운전기사가 내리라고 안내한다.

이제는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서, 사위가 컴컴하다.

(그날 찍은 사진을 사용할 수 없어서, 공식 홈페이지 자료를 게재하는 이유다.)

생전 처음인 '비 오는 날 묘지 방문' 경험 강도가 세진 것은,

묘지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 큰 데다가, 방문자는 딱 우리 두 사람뿐이다.

누워있는 분들 집중 관심으로,

비도 오는, '먼 데서 오신 손님'이라며 

악수라도 청해올 성 싶다.

묘지 정문
묘지의 중앙 성당. 총 500m 길이 아케이드기 20개의 돔을 얹고 양 옆으로 뻗어있다.

19 세기 후반 자그레브 시의 급성장으로 매장 용지가 부족해지자, 시 당국은 중앙 묘지 신설을 결정하였다.

용지는 언어학자이면서 정치가인 류데비트 가이(Ljudevit Gaj)가 시의 북동쪽 구릉의 비탈과 과수원을 구입, 정원을 일구어 소유하던 땅을, 1872년 그의 사망 후 경매를 통해 구입하였다.

이 곳에 밤나무, 라임 나무, 단풍나무, 가문비나무 및 기타 여러 종의 나무들을 도로를 따라 더 심고, 1876년에 묘지를 개원하였다.

미로고이라는 이름은 류데비트 가이가 미로고이(Mirogoj)라는 발명가의 땅을 추가로 구입하면서 붙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자그레브 시는 ‘죽은 이들을 위한 웅장한 휴식처’를 만들자는 목표로 1883년 ~1914년에 걸쳐 헤르만 볼레에게 묘지의 콘셉트와 건축을 맡겼다.

헤르만 볼레는 자그레브 대성당과 공예박물관 등의 복원 작업을 주관했던 독일계 건축가로,

이 얹힌 당, 묘지 사이의 대로, 영안실 등을 갖춘 아름다운 네오 르네상스 건축의 미를 살려 묘지를 디자인했다.


유럽 역사주의의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건축물은,

중앙의 당을 중심으로 양 옆, 남북을 연결하는 20개의 돔이 있는 500m 길이의 아케이드는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다.

묘지의 진정한 기념비적 작업 중 하나로 인정받는 포털과 당은, 1차 대전후 경비문제로 지연되어.

그가 사망 한 지 3년 후인 1929년에 지어졌다.


 Herman Bollé의 작품을 유럽 역사주의의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인정훌륭한 건축 세부 사항뿐 아니라, 견고함에서도 입증된다.

1880년 지진으로 도시의 1700개 이상의 주택이 크게 손상되었으나

진원지에 매우 가까웠던 묘지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이반 메슈트로비치를 비롯하여 크로아티아의 저명한 조각가들의 귀중한 기념물과 함께

예술, 건축, 정원 디자인,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열려있는 야외 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크로아티아의 정치, 사상, 예술, 과학, 공예 및 스포츠계의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묻혀있다고 한다.


묘지 성당 내부
성당을 중심으로 남북 총 500m 길이로 뻗어있는 아케이드
아케이드 위의  돔들
마르고이 묘지 건축 설계자 헤르만 볼레의 묘
아케이드따라 늘어서 있는 묘지들의 조각작품
크로아티아 유명한 오페라 가수 Milka Trnina 묘, 오른쪽은 플리트비체 폭포에 붙어있는 그녀의 명패( Milka 초콜렛 명칭의 주인 )

다양한 조각품과 독특한 형태의 예술적 감성을 풍기는 조형물로 꾸민 묘들의 묘비는 더러 짐작될만한 내용들이 써있기도 하다.

당 뒤쪽으로, 크로아티아 초기 대통령 Franjo Tuđman의 무덤이 검은색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공원 사이의 묘지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본다.

날씨 좋은 날에 왔으면 차근차근 돌아볼 만 한데, 아쉽다.


 자그레브 코미디 (전용) 극장

버스로 다시 성당 앞에 되돌아왔다.

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소극장 앞에 하차했다.

공연장 입장 대기중인 그들 속에 우리도 슬쩍 끼어들어본다.

나이 든 여성들이 진주 목걸이를 하고 우아한  정장 차림인걸로 보아 주목받는 공연인 모양이다.

세대층도 다양해서 아주 젊은 여성들도 많다.

한껏 차려입은 그들의 의상과 화장발을 구경하는데, 우리를 좀 생경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komedija 라고 표기된 입간판이 이제야 보인다. 코미디 공연인가 보다. 

도저히 이해 불가 장르, 재빨리 빠져나온다. 

본의 아니게 뻘쭘한 상황을 만난 그곳은,

알고보니 ‘자그레브 코미디 (전용) 극장’이었다.


여행 마지막 만찬

그사이

거리는 점차 불빛에 물들고,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린다.

길가에 펼쳐진 야외 식당은 비 때문에 한산하고,

시내의 격조 있는 레스토랑 안,

은은한 불빛 속에서 손님들이 담소하며 저녁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창문으로 들여다본다.

아까 미리 사다 둔 식품만 아니라면,

여정 마지막 만찬은 품위 있는 레스토랑에서

봄 비 내리는 초봄 밤의 정취를 만끽해도 좋았을 것이다.


젖은 신발에, 종일 걸어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우린 숙소를 향한다.

아껴서 여정 마지막 만찬 메뉴 된 즉석밥과 라면 그리고 돼지고기 감자찌개

그리고 여정 마지막 밤

비는 내내 내린다.

자그레브 거리는, 불빛에 번져 독특한 야경을 빚는다.

나란히 누운 옆자리 짝꿍,

열 두번밤의 동숙자에게 고마움이 다.

침실은 크기가 커서인지 다소 춥다.

이불 크기가 넉넉지 않아서 서로 상대 쪽으로 밀어주다, 어느새 잠들었다.


마지막 날 여정은 미마라 박물관

오후에 공항으로 이동하므로 오전 시간이 넉넉히 남아있지만,

굵은 줄기로 쉬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12시 숙소 체크 아웃시간 맞춰 오가기가 어려우니,

길 건너 미마라 박물관으로 다.


박물관은 1980 년에 설립되어 1987년 7월 17일에 일반에 공개했다.

유고슬라비아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안테 토피치 미마라(Ante Topić Mimara-:1898-1987)

자신이 평생 수집해온 3800여 점의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을 기증하여 세운 것이다.

그는 1985 년 12월 31일,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내 삶의 목표를 실현하고 고국과 크로아티아 국민에 대한 나의 빚을 완수 한 것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기쁨으로 내 마음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며 자신의 애국적인 동기를 표현했다.

그의 소장 작품들은 '시공간의 폭이 매우 넓은데 회화의 경우에는 비잔티움 시대부터 인상파에 이르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각종 유물들, 중세시대의 조각과 공예품들, 페르시아의 각종 융단, 중국과 이슬람 문화권의 각종 작품들까지에 이른다.'고 안내하지만

실제로수준있는 위작컬렉션으로 

전시품의 99%가 해당된다는 설로 더 알려져 있다.

1987년 개관 무렵의  박물관 ( 발췌: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전경 ( 자그레브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
위에서 본 박물관 (자그레브 관광청 자료)

건물의 규모에 비해 관람객이 거의 없다.

우리는 맘 놓고 천천히 그림의 세부적 표현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으니 좋다.


작품 한점만 내걸려도 삼엄한 경비를 받아 마땅한 어마어마한 유명 작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복도 한적한 귀퉁이에 피에르의 작품이 걸려있기도 하니 지나칠수 있다.

그런데 각 작품 설명 헤드셋은 구비되어 있어도,

수많은 전시실 어느 곳에도

관리 직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휴게 공간 소파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관람하는 여유를 누렸다.


2층 홀에서는 관객 없는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전시실 한 방은 안테 토피치 미마라  기념관으로 만들어져 생전 그와 관련한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위작이던 뭐던 충분히 들여다보니 좋기만 하다.

위작을 쉽게 들키지 않으려고 들인 품만큼의 노력을

우리는 감상하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작품도,

관람자 성향에 맞으면 훌륭한 감성을 일으키는 게 예술 아닌가!

나는 취미로 더러 그리던 그림들의 세부 묘사를 위해

맘 놓고 작품을 들여다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 2020년 지진으로 인해 박물관 건물은 큰 손상을 입어 지금 휴관중이다.)


이제는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

비 오는 자그레브에게 안녕을 고하며

우리는 드디어 크로아티아와 헤어진다.

중앙역 앞 광장
밤의 비행에서 내려다본 두바이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인천공항에 접근하는 비행기


14일 여정의 크로아티아 여행 평점은 5점/5점에 주저함이 없다. 기대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때론 감동적이기도 했다. 더해서 여정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5개월 후인 9월 21일~10월 14일,

22박 24일 여정으로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5개국, 16개 도시를 여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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