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소비자가 바라보는 여행 CREATOR,1
여행 자체가 목적인 여정과, 공유가 전제됨의 차이?
생각보다 길어진 코빅으로 몇 년째 이어진 자유여행을 접고 있다.
대신, 여행 영상을 통한 간접경험에 재미를 붙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 상의 여행 영상을,
폰이나 TV로 재생해서 보는 세상은 나에게 닫혀있었다.
TV 여행 프로그램 방영시간 맞춰 시청하거나, ‘비디오 영상물 다시 보기’에만 열심이었고.
아주 오래전,
세계여행이 멀기만 했던 시절,
TV 여행 프로그램 방영시간에 맞춰 집에 당도하려고,
퇴근 후 귀가를 서둘렀던 때부터의 일이니,
역사 오랜 접근법.
요즈음
비로소 신세계에 들어 선 나는,
국내외 여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인터넷 상의 많고도 많은 여행 영상물과 함께,
만족도 높은 간접 여행에 푹 빠져 지낸다.
어떤 것들은,
1인 제작물임에도,
기업 영상물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영상미와 내용을 담아내서,
CREATOR에게 찬탄과 감사가 절로 우러난다.
영상 편집을 위해,
그들이 쏟아붓는 시간의 길이와 부담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어그로로 시선 끄는
거품 많은 영상물이 아니라는 믿음이 들면
그들 여정을 좇아가며
안위와 행보에 관심 집중이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다니는지,
숙소 환경은 어떤지,
얼굴색은 요즘 어떤지 등등
자녀 챙기는 부모 심정 되어, 업로드된 영상을 챙겨본다.
간혹
새 영상 올리는 기간이 길어질라치면,
여행 중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을 거두지 못할 때도 있다.
많은 구독자들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인듯 하다.
'여행경비 형편' 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구독자 수 날마다 확인하고,
조회 수 늘려주려고 되풀이 재생도 내 몫이다.
때론
뜻하지 않은 상황발생이나 발언으로,
CREATOR가 구독자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으며
금세 표 나는 구독자 수 하락에
‘쿵’하고 내 가슴이 내려앉기도 한다.
그런 저런 일들로 엿보이는 ‘CREATOR’의 세계 인즉은,
여행이 좋아서 일찍이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영상물을 올리게 되고,
늘어나는 구독자들의 성원과 격려는,
긴장 일색인 여정의 심리적 베이스가 되고,
덕분에 얻는 경제적 소득은, 더 나은 환경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일거양득...
........
여기 까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세상일이 결코 한 면만 있지는 않은가 보다.
점점 많아지는 구독자들은
각자의 다양한 요구로,
여행자 행보의 직, 간접 통제 요인이 되고,
영상 귀퉁이에서 발견해내는 크지 않은 흠집에도,
준엄한 비판, 통렬한 성토를 퍼부어대니,
넓고 깊은 On line 세상에서,
영구히 치유될 수 없는 치명적 생채기를 입히는,
그야말로 무서운 집단으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정, 그 자체만이 목적인 것과,
일부 수단이 함께 병행되는 것과는,
여행자로서의 즐거움이 사뭇 차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운다.
즐거움을 나누려던 출발점이,
어느 날부터는
'어떤 걸 올려야 좋아할지'
구독자들 다양한 요구에의 책무가 되고,
심지어 콘텐츠 포커스가 '조회 수 상향'에 맞춰지기 시작했다면,
그들이 진정한 여행자로서의 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어쩌면 영영 '여행 불감증'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며칠 전
그간 내 자유여행을 함께 한 아주 조그만 수첩을 찾아냈다.
늘 저렴한 항공편을 선택하다 보니,
가방 무게 제한적이라, 수첩도 최소화.
먼지 뒤집어쓴 수첩에는
매일의 이동 구간별 대중교통 정보가,
꾸불거리는 글씨로 적혀 있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나마가 굳이 챙겨간 수첩의 중요한 기록인 이유는,
자유여행 계획하면서, 내가 가장 필요로 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여행기간에는
효율적 이동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이 정보들을 얻고자, 여행 블로그를 뒤진 시간이 얼마였던가!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혹시 여행을 계획한다면,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버스 번호, 트램, 지하철의 행선지, 정류장 이름 정도를 기록해 둔 것이다.
여행 전에
블로그나 브런치에 여행 관련 내용을 올릴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었더라면,
여행지 사진 수천 장을 삭제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뒤늦게 사진 없는 여행기를 브런치에 쓰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만,
한편으로는,
내 열아홉 번의 해외여행이
마냥 자유롭고 홀가분할 수 없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남에게 내보여질 것이 전제가 되면,
속박이 수반된다.
내 여행 족적의 전부 인,
수첩 안 몇 페이지에 남겨진 삐뚤빼뚤 글자들!
지금,
다시 들여다보며
내 여행의 의의는 무엇이었던지
새삼스런 자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