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술과 역사 속을 걷다

by 트릴로그 trilogue

예약한 11시가 되어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전망대인 아르놀포타워(Torre di Arnolfo)로 가기 위해서 우피치 미술관을 나섰다.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 때문에 불편하기는 했지만, 거리는 나름 운치가 있었다. 붉은 벽돌과 기와지붕, 그리고 비에 젖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거리의 풍경은 순간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며 나를 센티멘탈한 기분에 젖게 만들었다.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입구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중정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3층으로 올라가 아르놀포 타워 입구로 가보니, 비로 인해 타워 출입이 통제되어 관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두 개 층까지만 제한적으로 오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환불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보고자 하는 마음에 허용된 두 개 층만이라도 더 올라가기로 했다.

비로 인해 타워가 폐쇄되었다면 입장료 환불, 일정 변경, 혹은 베키오 궁 입장권 대체 같은 합리적인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도시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고, 벽 틈과 창살 사이로 보이는 시내 풍경을 담아보려 휴대폰을 들이댔다. ‘타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았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철창을 뚫고 바라본 두오모
다시 베키오 궁 중정에 서다

두오모 돔처럼 직접 오르면 돔 자체를 볼 수 없거나, 조토의 종탑처럼 철망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단점이 없는 데다, 전망대로 가는 대기줄도 짧고 계단도 적어 일부러 예약했던 곳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살짝 열린 베키오 궁 2층 출입문을 통해 ‘500인의 방’에 들어갔다. 피렌체 공화국 시절 500명의 시민 대표들이 회의를 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공간으로, 이후 메디치 가문 통치 아래 정치적·공식적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방은 바사리와 보티첼리의 프레스코화로도 유명하다.


500인의 방

특히, 피렌체 사회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을 잘 보여 주는 바사리가 그린 대형 벽화 안쪽에 다빈치의 작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왔다. 사라졌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다빈치의 작품인 ‘앙기아리 전투’였다. 수백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 작품은 공학자 출신의 미술사학자인 마우리시오 세라치니가 몇 십년 동안 이 작품을 차즈려고 노력한 끝에, 500인의 방 프레스코화로 덮인 벽 위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한 구절을 발견한 극적인 순간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Cerca trova’. 라는 글귀였다. 바사리는 높고 외진 구석에 그런 글귀를 적어 놓았다. 바사리는 베키오궁을 개조하고 벽화를 그리라는 의뢰를 받았고, 다빈치의 그림이 있었던 벽에 새로 프레스코화를 구리는 일을 포함해 의뢰 받은 일을 끝내야했다. 그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 개조작업을 할 때 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성삼위일체’를 보존했던 방식으로 다빈치 그림 앞에 벽을 세우고 이 새로운 벽위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양한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벽면을 파괴하지 않고 바사리가 그린 프레스코화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사리의 프레스코화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은 아마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생에 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공간은 정치적 기능을 넘어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품고 있었으며, 거대한 규모와 세심한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웅장함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시뇨리아 광장에 내려섰고, 관광명소 이용약관의 불합리함에 대해 투덜거리며 걸었다. 아쉬움과 화가 뒤섞여 편하지 않았는데, 광장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다비드〉상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어제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본 〈다비드〉상의 복제품이 비 오는 광장에서 묵묵히 서서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다비드〉상은 피렌체의 자유와 자부심을 상징하고, 바로 근처에는 벤베누토 첼리니의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가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근육이 과도하게 늘어나 근육질이 강조되어 마치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의 몸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없는 메두사의 시체는 페르세우스의 발아래 비틀리고 뒤틀린 채 놓여 있다. 위풍당당한 조각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이 조각 뒤에는 뒷편에 페르셍스 투구의 뒤에 숨겨진 작가의 초상이 있다는데 찾을 소가 없었다. 내일 베키오 다리에서 첼리니의 흉상을 볼 예정이다.


비가 계속 내리는 시뇨리아 광장의 표정들

호텔로 돌아가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한 뒤, 30분 후 일행들과 만나서 파니니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서브웨이처럼 빵, 고기, 치즈, 채소 등 재료를 직접 선택해 만드는 샌드위치 가게다. 성당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이 있었지만, 비 때문에 테이블 의자들은 모두 젖어 있었다. 더군다나, 실내에는 식사할 자리가 전혀 없어 결국 테이크아웃하여 우리 호텔의 루프탑에서 먹기로 했다.

파니니 전문식당

작은 가게지만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역시 평점도 높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샌드위치의 속 재료 중 채소는 세 개를 고를 수 있는데 바질, 토마토, 루꼴라 이렇게 넣었다. 일행 중에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빼고 주문하였다.

꽤 유명한 곳이라 비가 오는 날임에도 대기줄이 조금 길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8인분을 한꺼번에 주문하자, 종업원도 조금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식당 주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뭔가 분위기를 다소 부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약 2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주문한 파니니가 나왔고, 봉투에 담아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 루프탑은 4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작아 일행이 한꺼번에 일행들이 탈 수 없어 여자 네 명만 올라타고 남자들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담한 사이즈의 루프탑 공간은 크진 않았지만, 천장과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졌고, 더군다나 두오모 돔과 두오모의 일부가 보여 웬만한 루프탑 카페에 견줄 만했다. 4

호텔 루프탑

봉투를 열고 담겨 있던 8개의 샌드위치를 꺼내 보니, 뭐가 뭔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고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정도만 구별이 가능했고 치즈와 채소 종류는 조금 헷갈려서 그냥 대충 골라 들었다. 주문자에 따라 식별 가능하게 스티커나 표시가 있었으면 편했을텐데, 이런 부분이 아쉬웠다. 역시 우리나라의 세심한 서비스와 고객 맞춤형의 시스템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런 소소한 불편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구운 따뜻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다들 “맛있네!”하고 맛에 만족했다. 빵, 고기와 치즈, 다양한 채소들이 멋진 맛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새 소소한 아쉬움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오전에 방문했던 우피치 미술관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식사를 거의 끝마칠 무렵, 갑자기 막내의 부인이 앉아 있았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모두 깜짝 놀라 급히 다가가서 부인을 부축하여 안정을 취하게 한 후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머리가 테이블 상판과 아래 지지대에 닿은 부분에 혹이 조금 생겼지만 출혈은 없었다. 테이블 상판이 가벼운 양철 같은 가벼운 재질이었기에 망정이지, 두꺼운 철판이나 원목이었다면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불미스러운 에피소드가 추가된 셈이었다.


다행히 오후 일정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부인은 조금 더 안정을 취한 후, 각자 호텔방으로 돌아갔다가 개별적으로 오후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를 위해 7시까지 호텔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일행은 흩어졌다.


나는 곧바로 1층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가서 호텔 주인 할머니를 찾아가 방금 루프탑에서 방금 발생한 사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며, 재발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를 요청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크게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며 다소 상투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의자가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는 설명에는 마치 사용자가 무게중심을 잘못 이동해서 그런 것 아니었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거기서 한 번도 비슷한 사고는 없었다며 항변했다. 나는 할머니와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설전을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하여튼 의자들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게 좋겠다는 말만 남긴 채 방으로 올라갔다.


오후에는 두오모 성당을 다시 방문한 후, 산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라우렌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 그리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과 가죽공방 두어 군데를 둘러보는 게 우리 부부의 계획이었다.

두오모를 둘러보고 다시 거리로 나온 우리는, 산로렌초 성당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초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곳으로, 몬테풀치아노의 두오모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파사드는 여전히 미완성 상태였지만, 성당 내부는 매우 화려했다.

산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

메디치 가문을 위한 가족성당은 부르넬레스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뜻깊은 방문이었다. 그러나 가장 기대했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도서관 관람시간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놓쳐 아쉬웠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이 도서관은 11,000여 점의 메디치 가문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상징적인 대리석 계단도 밟아보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미켈란젤로가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대리석 계단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너무 컸다. 이로 인해 피렌체에 다시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가는 계단

성당을 나와 오른쪽 뒤편으로 돌아가면 메디치 예배당의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신 성소와 메디치 가의 무덤이 있는 돔 형태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의 흔적을 따라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하에는 위대한 로렌초와 동생 줄리아노의 묘가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형제의 방〉도 놓쳐서는 안 될 필수 관람 포인트다. 다만, 미켈란젤로의 〈비밀의 방〉은 사전 예약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메디치 예배당
피렌체의 예술을 미래에 남긴 여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조각이나 스태인드글라스의 화려함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성당이나 예배당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대리석의 화려한 장식미는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감상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빠듯하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피렌체 떠나는 날 아침 일찍 방문하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가죽공방(Bojola Firenze)을 찾아갔다.


유투브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방문하였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상점은 규모는 컸지만 아내가 찾던 가방은 없었다. 공방과 함께 운영한다는 다른 상점을 찾아가니,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장인 포스를 물씬 풍기는 분이 우리를 응대했다. 잠시 둘러보다가 디자인과 소재가 독특하고 가성비가 좋은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흥정까지 해서 만족스러운 가격에 쇼핑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가죽공방(Bojola Firen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