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야 바꿔보려니 참 힘이 듭니다
아직도 나는 마지막 증량(복용하는 약의 양을 늘림) 이후에 복용 양의 변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업무를 할 때도 큰 문제가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증량을 고려할 만큼의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이전처럼 머릿속이 뭔가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화를 잘 안 내게 되었다.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소리를 지를 만큼 심각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변하게 되고 나니 정신과에 처음 방문하게 된 2024년 2월 이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애써 정신과에 방문하고 약을 복용하며 생긴 변화를 지워버리고 싶지 않아서 기록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회사원인 내가 매일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특별한 일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흘러 들은 말이 생각났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글을 쓰지 않게 되면 나중엔 글을 쓸 수 없게 된다'라고. 애초에 이 기록은 '내가 이렇게 잘났으니 모두 와서 읽어보세요.'라고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약을 복용한 뒤 복잡한 생각을 비워낸 자리를 불안해하는 나를 보던 아내가 툭 던진 말에 시작한 것이었다. 몇 개의 글을 쓴 뒤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Medium에서 공개하던 글을 브런치로 가져온 것이고, 두 번째는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작가라는 단어를 내가 직접 쓰려니 조금 불편하다. 그저 나는 내 기록을 남길 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
어쨌든, 기록을 남기겠다고 마음을 정하니 내가 너무 내 장애에 대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라도 남기려면 뭔가 필요했고, 이럴 때 제일 쉬운 것은 같은 주제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Medium과는 달리 브런치는 날 반겨주었다. 모두가 한국인이고 모든 글이 한국어였다. 좋은 글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글을 구경하고 생각하는 것은 재밌었다.
하지만 ADHD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시는 대부분의 작가님들은 그들의 자녀에 대한 것이었고, 내가 쓸 글에 대한 영감이나 동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보수적인 매체로 옮겨가야 했다. 최근 논문을 검색해 보았지만 초록만 가지고는 나의 욕심을 충족할 수 없었다. 급히 아내에게 물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했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라는 책을 바로 대출할 수 있었다.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신지수 작가가스스로의 습관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 많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가 ADHD가 맞는지 의심하곤 한다. 필요에 따라 주위 사람에게 장애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 의외라는 반응이 제일 먼저 돌아온다. 당연히 '정신과에서 진단까지 받았다'라고 말해주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식지 않았다. 그런 대화가 끝나면 스스로에게도 의심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의심은 의도치 않게 단약 해버린 날을 회상하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증량에 대한 욕구 또한 마찬가지다. 증량을 하면 더 일반사람처럼 집중을 잘하게 되지 않을까? 이 허무함 역시 약이 적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라며 의심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와는 다르게 나는 의학적인 지식이 없고, 날 돌봐주시는 선생님의 허락 없이 약을 두배로 먹을 만큼의 배짱도 없는 것이다. 그저 재진날에 수줍게 물어보아야겠다. 하고 생각만 할 뿐. 내일은 2주 만에 다시 정신과에 방문하는 날이다. 2주 전 콘서타의 증량 이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한동안 같은 양으로 계속 복용하게 될 것 같다. 내일은 꼭 현재 나의 상태와 상태에 맞는 양이 처방 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