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어서야 겨우 여기까지 온 저를 다독여봅니다.
최근 SNS를 구경하다 보면 성공에 대한 콘텐츠가 많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쉬워 보이는 말로 유혹한다. 물론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성공했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대학생 시절엔 어린 마음에 성공하기 위한 활용서적들을 뒤적였다. 유머가 중요하다. 회사 생활에서 신중한 처세를 위해서는 인맥이 두터워야 한다 등 그럴듯한 목차가 기다랗게 뽑힌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 Herb Cohen의 협상의 기술 같은 책이다. 그런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룬 내 삶의 성공은 그 모든 실패 속에 운으로 주워 건진 작은 무엇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니 내가 대단한 자산가나 초월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저 내가 가진 장애인 ADHD를 조금 통제할 수 있는 느긋한 환경을 가진 회사원에 불과하다. 이런 성공도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노력은 했지만 나의 성공은 내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성공은 그런 것이다.
가족 외 누구에게든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관계, 집 대출을 제외한 빚이 없고 필요한 물건은 내 힘으로 모아 살 수 있는 재정적인 상태, 회사 동료나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업무 상황과 안정적인 직장. 그렇다고 억대 연봉이나 금수저 아니 동수저도 아니다. 이 정도의 성과는 성공도 아니라고 누군가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모두의 성공을 원한 것이 아니라 나의 성공을 원했고,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다. 그 성공의 중간에서도 ADHD로 인해 나의 내면은 살얼음을 걷듯이 힘들었고, 이제야 그 내면도 약을 복용함으로써 일부분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성질 좀 죽이고 살아. 너는 왜 그러냐 가끔씩 그러더라?
하지만, 약이 모든 성향과 충동을 억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약을 먹었는지 잊어버렸다. 콘서타와 다른 약을 먹어야 했는데 콘서타만 먹은 건 아닌지 헷갈렸다. 결국 쓰레기통을 뒤져 약봉지가 있는지 확인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끊임없는 불안감에 인스타그램이나 당근마켓 등을 끊임없이 새로고침 하며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보거나 멍하게 화면을 주시한다. 아직도 내가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 발생한 실패들은 머릿속을 맴돈다. 물론 약 덕분에 많이 줄긴 했지만 완벽하게 없어지진 않았기 때문에 이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습관적으로 입으로 짧은소리를 내어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이 불안이라는 것이 상당히 나에겐 크게 느껴진다. 일이 끝나고 느긋하게 넷플릭스를 보던지 책을 보면 된다고 하고 싶겠지만, 이런 수동적인 활동은 날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화면에 아무리 멋진 영상이 나와도 자극적인 내용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집중할 것이 필요한데 찾기가 어렵다. 내 불안 장애는 이유, 근거 또는 주제가 없다. 내 머릿속이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는 그 순간 불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 정신과 방문 시 선생님과의 대화 주제는 불안에 대한 대응 방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주의를 돌리는 방법은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었고, 지금까지는 효과도 좋지 않았다. 선생님이 좋은 방법이나 해결할 수 있는 약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과연 원하는 대로 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