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넘어도 약을 제때 챙겨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슬쩍 끼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들의 공통적인 바람 중에 하나는 단약(약의 복용을 중단함)이었는데 챙겨 먹기 힘들거나 귀찮다는 이유였다. 와중에 단약을 한 사람들의 후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충동적인 소비나 결정으로 손해를 보았다거나 약을 먹기 전에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 등으로 힘들었다며 귀찮지만 이젠 챙겨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보 아침약 먹었어?
나는 기상 직후 콘서타를 복용하고 오후 4시에 아토목신과 아빌리파이를 복용한다.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아토목신을 아침에 복용할 경우 눈이 흐려지고 잠이 와서 업무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반감기가 긴 아토목신을 오후 4시에 복용하고 즉효성이 뛰어난 콘서타는 업무 시작 전 복용한다. 문제는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다. 항상 기상 직후 복용해야 할 콘서타를 잊어버린다든지, 애매한 시간대에 챙겨야 할 아토목신과 아빌리파이를 잊곤 한다.
약의 복용을 잊어버리고 외출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이전 글에서 얘기했던 증상인데,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부터 머릿속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날 선 질책을 누군가에게 하게 되고 심하면 화가 폭발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이미 때는 늦다. 뭔가 이상함을 스스로 눈치채고 약의 복용을 잊은 것을 알게 된 뒤는 이미 늦다. 끓어올라버린 감정은 좀처럼 식지 않아서 '약의 복용을 잊었다. 미안하다.' 같은 말은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지난 뒤 마음이 진정되면 나의 치졸함에 부끄러워진다.
아빠 요즘 약 잘 안 먹는 거 같더라? 자꾸 화내던데?
이런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니 약을 독하게 챙겨 먹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그날 약을 먹었는지 아닌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리는 매일 정해진 업무를 하는 내 책상 앞이다. 그래서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 아침에도 업무용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책상의 마법은 주중에만 쓸 수 있나 보다. 그렇게 복용을 잊어 의도치 않게 단약 하게 된 날에는, 특히 외출을 하게 된 경우에는 되도록 입을 다물고 최대한 말을 아끼려 한다. 집에 도착해 약봉지를 뜯기 전까지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거나 휴대폰만 본다. 아마도 아내나 아이는 이런 내 반응을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약국으로부터 받은 작은 약통에 외출용 약 한 회 분을 미리 챙겨둔다.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내가 비상용 약통을 챙겨 나온 사실도 잊고 만다. 언제쯤 조금 더 나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