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 둘째가 광주에서 자취하는 언니를 보러 갔다.
주말 동안 언니 얼굴도 보고, 바람도 쐴 겸 가는 것이다.
아침에 고속버스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딸은 처음에 서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고등학생인 딸이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
1초의 생각도 길게 느껴지는 듯, '엄마랑 같이 갈까?' 말하려다가 '혼자서 여행하고 싶다는데 어쩌지...?'
마음속으로 아주 잠시 생각한다.
"혼자 서울 가는 것은 아직은 위험한 듯해. 광주 언니집에 여행겸 가는 게 어떻겠냐?" 하니
다행히 "알겠어요" 한다.
학창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고,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해소방법을 찾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걷기를 좋아했다. 뭔가 가슴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마냥 걸었다.
그렇게 실컷 걷고 오면, 어느덧 기분이 좋아졌다.
20살이 지나서는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오면 풀렸다.
딸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 중. 고등학생 때, 그리고 20살에 나는 어땠지? 하고, 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한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꼰대 같은 엄마일 수도 있다.
쿨한 척 얘기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꼭 얘기해 준다.
기본, 본질적인 것은, 꼭 중심에 있어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간다고 할 때, "혹시 여행 갈 여비는 모아두었니~?" 하고 물어보았다.
"모아야지~"한다.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 엄마는 일단 가만히 있는다.
며칠 뒤, "광주 버스비는 엄마가 내줄게~" 한다.
용돈에 대한 얘기는 아직 안 한다.
드디어 어제, "광주 갈 준비는 다 했나~?" 하고 물어본다.
"당연하지~~"대답한다.
"용돈은 있나?" 하니, 머뭇거리는 딸이다.
한 달에 두 번 나누어 용돈을 준다. 한 번씩 밥 사 먹고, 군것질에, 버스비까지 쓰면 늘 부족한 것이 눈에 보인다.
눈치를 보니, 용돈이 조금은 남아있는 듯하다.
"여행 가는데 돈이 너무 없어도 불안하니까, 엄마가 조금 보태줄게~" 말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넉넉지 않은 환경이었다.
옷을 사촌언니로부터 3,4차까지 물려 입은 것은 기본이고, 체육복도 새것을 산 기억이 없다.
가족끼리 여행 간 기억도 거의 없다.
다달학습이라고 달마다 사라고 하는 문제집은 살 생각조차 못했다.
피아노학원, 주산학원 가고 싶었지만 한 번도 못 갔다.
아, 그래도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수학의 정석' 수업을 한 달간 들었구나. 300여 명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당시 엄마는 우유배달을 했다. 배달과 동시에 판매도 하셨던 엄마의 허리띠지갑에는 항상 동전이 있었다. 용돈이 부족했던 나는 엄마가 주무실 때, 지갑에서 동전을 몰래 꺼내 쓰기도 했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분명 알고 계셨을 터이다.
경제적인 결핍이 참 힘들었기에, 우리 아이들은 너무 힘들지는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둘째에게 '친구들 받는 용돈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보았다. 보통은 20만 원, 많게는 50만 원을 받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딸이 받는 용돈은 적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기에, 경제관념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아보라는 이유를 들며 딱 필요한 만큼만 준다.
약간은 부족하고 결핍이 있는 것이, 세상살이에 '절실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나쁜 것이 아니다는 것도 안다.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돈이 넉넉하여 딸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고도 싶다.
아이가 돈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이것이 부모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지난주 직원역량강화 교육 때, 영상을 하나 봤었다.
한 고등학교 교실이다.
"앞으로 살 날이 1년이라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원'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거의 모든 학생이 "꿈을 이루는 것이요!"라고 답한다.
그런 후, 교실의 조명이 꺼지며 학생들의 아빠의 영상이 나온다.
아빠들은 하나같이 "남은 가족을 위해 '5억 원'을 선택할 거예요."라고 한다.
'자식과 부모의 차이'가 이런 것이었나?
눈물이 펑펑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