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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Nov 03. 2024

'아버지'라는 이름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해외 선교활동으로 1년 5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평소 씩씩하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오늘 본 모습은 그전과는 조금은 다르다.
기가 꺾인 듯하기도 하고,  성숙해 보이기도 한다.

작년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당시 그녀는 해외에 나가 있을 때다.
1달이 조금 지났을 시점으로 기억한다.
부고를 듣고 조문을 갔다. 그녀는 당시 들어오지 못하였다.
상황이 도저히 안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오늘에서야 그때 상황과 그녀의 마음을 들었다.
아버지 상이 났지만,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두 달 전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안 가면 안 되겠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 같다.." 말씀하셨다 한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밖에 있다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왼쪽다리에 마비가 왔다고 한다.
그녀가 10살 때의 일이라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일하며, 오 남매를 공부시켰다고 한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다고...
넷째인 그녀는 언니, 오빠, 남동생에게 끼어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결핍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사랑을 언제나 갈망한다고 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 나요.
외투를 여며주시던 모습, 포근히 안아줬던 느낌, 같이 식사했던 시간..."

나쁜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이, '그리운 시간'이 더 생각난다 했던가?!
그녀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내뱉음이, 아버지를 향한 '애도의 시간'이라 느껴진다.
"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미안한 마음, 한 번씩 솟아오르는 상처로 힘들다고 한다.
그녀의 생각과 마음, 감정을 존중한다.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 가슴속 한편에 아름다움으로 남으리라. 살아갈 용기를 회복하리라.
그렇게 되기를 조심스레 바란다.

그녀는 나보다 5살 언니이다. 그런 언니가 오늘 내게 울면서 얘기한다.
이럴 마음이 없었는데,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다고 한다.
잘 들어주고 공감했을 뿐인데 말이다.
나를 편하게 생각해 주는 그녀가 고맙고, 오늘의 시간에 감사하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고혈압에 당뇨가 있고,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발상처가 생길 때마다 고생하시는 아빠.
그녀의 아버지처럼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주지 못했던 아빠.
그녀처럼 나 또한 아빠에 대한 연민이 있다.
계단을 두 계단 씩 오르며, 큰소리 뻥뻥 치시던 아빠. 이제는 몸도 마음도 연약해졌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새카맣던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생기고, 나이 드신 부모님이 눈앞에 있다.
이 숙명 같은 현실도 받아들여야겠지.

오늘은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
내일은 퇴근 후, 얼굴 뵈러 가려고 한다.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힘들게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딸이기에 정말 그립고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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