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Chapter 6 과거, 재회, 에필로그
집을 매물로 내놓고, 팔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잔금의 일부를 남편에게서 받았다.
부부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짐이 이리 쉬울 수가.
그녀는 받은 돈으로 산비탈에 건축 붐의 상징 같은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을 샀다.
한 동에 8 가구가 거주했다. 공유면적을 빼면 그녀가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은 10평도 채 되지 않았다. 방 두 개, 작은 화장실 하나, 좁은 부엌, 4평 정도의 거실이다. 앞뒤로 작은 베란다가 있어 유용하였다.
그녀는 자기 명의로 된 작은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매일 옛집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곳의 아름다운 추억은 기억의 깊은 방에 넣어두고 문을 닫았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그녀만의 방어였다. 기억에서 지우는 것.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 슬픔과 고독은 짙은 안개처럼 그녀의 삶에 깊숙이 드리워져 자리 잡았다.
그녀는 그동안 삯바느질과 수예품을 양품점에 팔아 모은 돈 그리고 남편이 생활비로 보내준 돈을 알뜰히 모았다. 아들도 장학생이었으니 학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아 제법 모여있었다. 지금 그 돈으로 생활한다.
오랜 세월 앉아서 바느질을 하여 몸은 병들었고, 이젠 눈도 잘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었다. 있는 돈으로 아끼며 생활하여 지금까지 10년의 세월을 버텼다. 통장의 잔고는 비어갔고, 그녀에게 남은 날들도 통장의 잔고처럼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고독한 삶은 심지만 남은 초와 같았다. 마지막 촛농을 태우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죽음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꼈다. 몸은 쇠약해졌으나, 마음은 오히려 평화로워졌다.
'어쩔 수 없는 시대였어, 내가 원망하고 슬퍼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나.'
그녀에게 이혼을 통보한 남편.
아이가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면 오랜 세월을 함께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미 타인이었던 것을, 긴 세월을 표 나지 않고 주위에 들키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원망이나 미련은 이미 없었다. 그녀가 마음 아파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일흔의 병든 노인이 되었다.
집이 그녀의 소유라는 이유로 정부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았다. 주변을 정리할 것조차 없었다. 그녀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냈다.
문득 그녀는 도마 위의 생선이 생각났다.
‘아, 생선을 조리해야 하는데.’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꺼풀이 납처럼 무겁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땀에 젖은 등이 바닥에 들러붙어 불쾌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저 생선이 상할 텐데...’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그녀의 의식을 깨운다. 그러나 곧 다시 아득해진다.
해는 사위어 들어 한낮의 맹렬하였던 뜨거운 열기는 힘을 잃고, 밤이 어두운 장막을 치고, 그녀는
어두운 거실에 누워있다. 싱크대 위의 생선, 불을 켜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기분 나쁘게 끈적한 불쾌함도 잊었다. 편안하다.
멈추었던 시간이 마법처럼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태엽이 빠르게 감기고, 땅이 주름을 잡듯 뒤로 밀려났다. 시간은 거꾸로 달렸다. 하늘의 구름도, 바람도, 기억도 모두 되감겼다. 시간의 실타래가 감기는 것이다.
그녀는 파란 철대문과 마주한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곳곳이 녹슨, 정든 옛집의 문.
문을 밀어 열자 끼익,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낸다.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겠네, 경첩에 기름도 바르고.' 문을 닫자 철커덩 소리를 내며 문이 굳게 닫힌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듯이.
두어 계단을 올라 마당에 올라 서자, 그리운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단의 꽃들, 텃밭의 채소들, 수세미넝쿨과 대나무 아치에 달린 포도송이들, 닭장에서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졸고 있는 닭들.
모두 것이 그대로였다. 그리웠던 나의 집, 나의 꽃밭, 나의 텃밭.
그렇게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간다. 그녀의 마음은 무슨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잠가두었던 소중한 기억들이 풀려났다.
‘아! 집에 왔구나. 그리운 내 집에 왔구나.’
그녀의 얼굴이 옛 시절의 모습으로 환하게 밝아진다.
현관을 열고 마루 위로 올라서니. 집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방 미닫이 문을 열자, 예전 모습 그대로 그녀를 반긴다. 마루 끝으로 가 뒷문을 열었다. 바위에 꽂아 둔 대나무 대롱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려 아래에 작은 샘을 이루고, 조롱박 바가지 동동 떠 있다. 뒷마당의 언덕은 녹음이 짙고, 매미는 귀 따갑게 울어댄다.
녹음이 청청하고 맑은 물소리는 청아하게 울린다.
눈을 감고 긴 호흡으로 싱그러운 바람을 깊숙이 마신다. 오랫동안 막혔던 숨이 긴 한숨으로 흘러나온다.
그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진다.
마침내, 그녀는 아들의 방문을 연다. 책상에 앉아 있던 아들이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긴다.
“어머니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그녀도 환하게 웃는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어두움은 거실에 가득하다.
도마 위에 생선은 뜨거운 여름열기에 썩어가고,
잠그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물은 계속 흘러내린다. 바닥으로...
#재회 #시간의 마법 #태엽이 감기다 #귀향
에필로그
<어느 여인의 고독한 죽음>을 마칩니다. 제목을 <고독>으로 바꾸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중한 댓글들과 격려의 하트 감사합니다, 피드백을 받고 싶었습니다.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신 댓글, 그리고 예리하게 지적해 주신 먼 곳에 계신 작가님과 댓글에서 느껴지는
'이번은 좀' 하는 뉘앙스를 주시고, 어떤 회차에서는 '잘했다' '수고했다'로 평을 해 주신 작가님,
저는 그 뉘앙스를 느끼고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즉흥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원래 생각이 떠 오르면 노트에 제목을 쓰 두었다, 글을 거침없이 쓰다 보니 날것의 글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단편이 잘 쓰인 것인지는 모릅니다 만...
아무리 즉흥적으로 머리에서 문장을 내어 놓아도 '작가라면, 마지막은 그리하면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읽고, 또 읽어보며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중복하지 마라.'
'지나치게 감정이입 하지 마라' 등.
그것이 이번 제가 받은 피드백이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두어 번을 이렇게 하고 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 같습니다. 정말 생 날것으로 뛰어들어 마음으로만 글을 썼습니다. 읽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 글은 울부짖는 슬픔이 아닌 슬픔을 차곡차곡 쌓은 고요하고 깊은 내면의 슬픔입니다.
주제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슬픔도 우아할 수 있다는 것, 깊은 심연의 슬픔과 고독, 사각지대에 있으면서
우아한 삶과 마지막을 맞이하는 여인 그리고 자신을 비참하지 않게 기억의 방에 슬픔과 추억을 넣어두고
의식적이고 선택적인 기억상실로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 슬픔의 정도가 한꺼번에 표출되지 않고 천천히 드러나 종래는 가슴에 탄식이 나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고, 그것을 시대의 과정에 넣어보았습니다.
일본영화 <편지>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오 갱끼 데스까"에 열광할 때, 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에게 편지가
전달되며 거의 기억에도 없는 한 소년이 사랑으로 다가왔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에 가슴 저린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슬픔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좋은 글벗과 멘토를 만난 것은,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걸음을 뚜벅이처럼 글을 쓰 보겠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몸이 아프면 쉬고 좀 나아지면 글을 쓰며 스스로 다지겠습니다.
다음 단편은 새롭게 장르가 다른 글을 쓰고 있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동안 25년 초에 쓰두었던 <글을 쓰니 그림이 되었다>를 다시 모아 올리겠습니다.
지나시다 보이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필로그 #조용한 슬픔 #고독한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