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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 May 20. 2024

엄마, 아빠가 나를 차단했다

내가 죽을죄를 졌나

햇빛이 반짝이는 날이었다. 눈이 부셔서 손을 이마에 갖다대었다. 온세상이 환하게 빛났다.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따사로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마음은 울적했다. 해가 질 무렵,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 엄마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자 기계의 음성만 들렸다. 두 사람 모두 나를 차단한 것이다. 어째서일까. 엄마는 나와 살 때, 걸핏하면 부엌에서 칼을 꺼내 와 자신의 배를 찌르려 했다. 내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정확히 기억해냈다. 엄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 연락처를 차단한 적이 없다. 오늘을 제외하고는. 두사람나를 버렸을까.



먼저 차단한 건 나야

사실, 차단은 내가 먼저 시작했다. 엄마의 전화는 내 숨통을 조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바라는 게 많았다. 엄마 꿈은 내가 간호사가 되는 거라고 했다. 취업난에 취업률 1위가 간호사라는 이유였다. 문제는 내 몸에 뼈밖에 없다는 점이다. 빼빼 말라 늘 반에서 악력 꼴찌를 차지했다. 아무리 먹어도 몸에 살이 찌지 않았다. 애초에 먹는 양이 적었다. 축제 날, 다리 다친 친구는 내가 짐을 옮기는 걸 보고 기겁하더니 내 손에서 물건을 가져갔다. 키도 반에서 제일 작았다. 늘 맨앞자리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꿋꿋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엄마의 꿈이 간호사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나를 차단한 이유


왠일로 이번에 엄마는 간호사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빠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말했다. 아빠의 노후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엄마는 이따금씩 아빠의 폭력에 상처받지만 여전히 아빠를 좋아한다. 외할아버지가 한량이어서 엄마는 반지하에서 살았다. 엄마는 발이 다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빠는 돈을 성실히 벌어온다. 엄마가 아빠에게 의존적이며 집착하는 건 당연하다. 엄마는 아빠가 가장 노릇을 했으니 내가 자식 도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건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자식으로써 응당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자라면서 나는 엄마의 독설을 견뎌야했다. 결국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엄마는 내가 키가 작고 못생겨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서류를 통과해도 회사의 면접관이 내 키를 보고 비웃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바 사장님이 보자고 해도 연락에 응할 수 없었다. 나를 싫어할 테니. 나는 엄마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데 엄마는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 돈 못 벌어. 엄마 때문이잖아.

그러자 엄마는 나와의 연결을 끊었다.



아빠, 잘못한 거 맞잖아

아빠는 내게 화가 난 게 분명하다. 전에 아빠에게 내가 잘했을 때 나를 칭찬해달라고 말했다. 아빠한테 칭찬을 듣는 게 좋다는 말도 덧붇였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아빠는 제 딸의 부탁을 친히 거절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건 얼마나 돈을 버는지였다. 그는 딸에게 돈 주는 걸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상처를 받았다. 아빠가 칭찬을 안 해줘서가 아니라, 내가 버는 '돈'에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놈의 돈, 돈, 돈.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그 다음의 반응이 차단이었다. 아빠는 속좁은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엄마는 아빠가 홧김에 나를 해칠 수 있다고 내게 여러 번 경고했다. 이런 인간이 내 애비라니.




본래 인간이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다. 하지만 유독 이 사회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상식을 파괴하는 것을 즐긴다. 엄마는 복종을, 아빠는 권위를 주장한다. 부모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자식이 '동등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간에 나는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뿐인 나, 잃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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